원화가치가 엔화와 비슷하게 움직인다는 뜻의 ‘원·엔 동조화’가 최근 이상 조짐을 보이고 있다. 원화가치 하락세가 엔화를 못 따라가면서 원·엔 환율이 100엔당 900원 선에 바짝 다가섰다. 반년째 지켜온 ‘100엔당 900원대 초·중반’ 공식이 깨지면 엔저에 가속도가 다시 붙을 수 있다. 외환당국은 고심이 깊다.
원화보다 더 떨어지는 엔…900원선에 바짝
○가파른 엔화 약세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7일 원·엔 환율은 100엔당 910원65전으로 2008년 2월29일(895원57전) 이후 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30일(927원9전) 이후 6거래일 연속 하락한 결과다. 엔화와 비교한 원화가치가 그만큼 올랐다는 의미다.

원화와 엔화를 똑같이 달러와 비교하면 최근 추세가 뚜렷이 나타난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7일부터 이틀간 0.6%(6원20전) 올라 8일 달러당 1091원으로 마감했다. 엔·달러 환율도 같은 기간 오름세로 전환했지만 그 상승폭은 1.2%로 더 컸다. 달러 대비 엔화가치가 원화보다 더 빠르게 하락한 것이다.

원·엔 환율의 하락 압박은 8일에도 계속됐다. 이날 오전엔 100엔당 905원대(외환은행 고시 기준)를 기록해 100엔당 910원대가 일시적으로 붕괴하기도 했다. 달러 대비 엔화 약세가 가팔랐던 올초에도 원·엔 환율은 100엔당 910원 위를 지켰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100엔당 910원은 오랫동안 원·엔 환율의 방어선으로 여겨졌다”며 “최근 부쩍 이 선이 아슬아슬해진 것은 원·엔 동조화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의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주형환 효과’ 떨어지면

원화가치가 엔화 대비 강세이면, 즉 원·엔 환율이 하락하면 한국 경제가 체감하는 엔저 효과 역시 커진다.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일본 기업에 뒤질 수 있기 때문이다.

100엔당 1200원에 달했던 원·엔 환율이 지난해 1000원대까지 떨어지자 정부는 구두개입에 나섰다. 주형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작년 11월6일 국회에서 “엔화와 원화가 동조화해서 움직이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원·엔 환율이 더 이상 추락하지 않도록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예컨대 엔화가치가 달러 대비 급락했을 때 정부가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이면 원화가치 하락 속도도 빨라질 수 있다. 이후 원·엔 환율은 급락세를 멈추고 100엔당 910~950원 사이를 일정하게 오갔다.

원·엔 환율이 하한선을 다시 깨뜨린 데 대해선 우려가 적지 않다. 동조화 흐름이 깨지면서 자칫 원·엔 환율 하락세가 가팔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수출업체의 달러 매도가 몰리면 원화가치는 엔화와 달리 상승압박을 받는다”며 “외환당국도 국민 세금을 갖고 무한정 달러 매수로 맞서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엔저 방어선이 손쉽게 뚫리진 않을 것이란 반론도 있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원화가치는 연말까지 달러 대비 하락세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고 설명했다. 원·엔 환율이 900원에 접근하면 외환당국 구두개입이 다시 이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