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사상 첫 '세금 부과 집행정지' 판결
법원이 세금 낼 형편이 되지 않는 기업이 제출한 세금 납부 시점을 늦춰 달라는 ‘세금 부과 집행정지’ 신청을 60여년 만에 처음으로 받아들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금까지 ‘과세 원칙에 어긋난다’며 기각했던 법원이 무리한 세금 추징으로 기업 경영에 애로를 겪고 있다는 기업 측 하소연을 들어준 것이다. 수십개 기업이 관련 신청을 준비하기 위해 로펌의 자문을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2심)은 동부하이텍이 국세청으로부터 부과받은 세금 778억원(영업권에 대한 과세금액)에 대해 낸 세금 부과 집행정지 신청을 지난 3일 받아들였다. 2013년 10월 1심인 서울행정법원에서 세금 부과 집행정지를 인용한 이후 두 번째다. 1951년에 제정된 행정소송법에서 세금 부과에 관해 집행정지가 내려진 경우는 동부하이텍이 62년 만에 처음이었다.

현행 행정소송법 23조는 세금 부과로 △기업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고 △세금 부과에 문제 소지가 있을 경우 세금 납부를 유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동부하이텍은 2011년과 2012년 각각 980억원과 477억원의 적자(영업손실)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세금을 낼 경우 회사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주장해 법원의 인용 결정을 이끌어냈다. 법원이 동부하이텍 합병 과정에서 발생한 영업권에 대한 세금 부과가 부당하다고 판단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이 같은 결정 이후 상당수 기업이 세금 집행정지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일 99억원의 세금을 국세청으로부터 부과받았다고 공시한 셀트리온제약도 세금 부과 집행정지 신청을 추진 중이다. 세금 99억원은 지난해 당기순이익 58억7000만원의 1.7배에 달한다.

앞서 관세청과 4000억원대 소송을 진행한 위스키 제조사 디아지오도 세금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에 신청했다가 양측이 합의를 보면서 취하했다. 박영욱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국세청으로부터 거액을 추징당한 기업 수십 곳이 관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당혹감에 휩싸였다. 세금 부과 집행정지가 과세 원칙에 어긋난다며 반발하는 기류도 있다. 세법에서는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부과된 세금을 기한 내에 내지 않으면 세금의 일정 비율을 가산세로 내야 한다. 하지만 세금 부과 집행정지가 받아들여지면 결정 이후 가산금을 따로 낼 필요가 없고 소송이 끝난 뒤 본세만 내면 된다.

동부하이텍이 부과받은 세금 778억원 중 가산세는 321억원에 달한다. 또 집행정지가 빈번하게 받아들여지면 세금을 내지 않고 집행정지 소송부터 내는 기업이 급증할 수 있다는 게 국세청의 불만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세금 관련 소송은 일단 부과된 세금을 내고 불만이 있으면 소송을 제기해서 돌려받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