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장충동 이해랑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나생문’(극단 수 제작, 구태환 연출)은 라쇼몽의 주제를 영화보다 훨씬 명쾌하고 친절하게 전달한다. 나생문은 일본어로 라쇼몽이라고 읽는 ‘羅生門’의 한국어 발음이다.
극은 영화의 줄거리와 구성을 거의 그대로 따른다. 숲속에서 산적이 무사 부부의 아내를 겁탈하고, 남편은 칼에 찔려 죽은 사건을 두고 재판소에 나온 당사자들의 진술이 엇갈린다.
산적은 정정당당하게 결투를 벌여 무사를 해치웠다고 하고, 아내는 겁탈당한 뒤 모멸에 찬 남편의 눈빛에 우발적으로 그를 찔렀다고 한다. 무당의 몸을 빌린 무사의 혼령은 산적과 아내의 애정 행각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현장에 있던 나무꾼의 증언이 가장 그럴싸하지만 나중에 밝혀지는 부도덕한 행위로 인해 신뢰성을 잃는다.
극은 영화에는 빠진 원작 소설 부분을 추가해 주요 인물들의 출신 배경과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영화에서 다소 동기가 모호했던 행위들에 설득력을 더한다. 각 진술을 재현하는 장면에서 캐릭터 변화의 폭도 더 크다. 산적은 호탕한 장부에서 소심한 겁쟁이, 아내는 정숙한 부인에서 요부 사이를 오간다.
이런 적극적인 재해석은 연극 특유의 현장감과 생동감을 잘 살린 연출기법과 배우들의 호연이 어우러져 영화의 난해한 면을 쉽게 풀어준다. 극적 재미도 쏠쏠하다.
하지만 과도한 느낌이 없지 않다. 세세한 설명과 극심한 캐릭터의 변신은 관객이 생각하고 개입할 여지를 좁힌다. 극 후반 진술 재현 장면에선 주요 인물을 지나치게 희화화했다. 반전이라 할 만한 극적 전개와 캐릭터 변화가 주는 감동이 배우들의 과장 섞인 코믹 연기에 상당 부분 희석된다. 내달 16일까지, 4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