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일본에 사는 세금 체납자의 재산을 압류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한국 정부의 세금 징수권이 해외로 확대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세청, 세금 체납자 일본 재산 압류 나선다
14일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에 따르면 최근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상대 국가 안에서 서로의 세금 징수권을 보장해주는 협약인 ‘징수 공조 약정문’을 맺기로 하고, 세부 조항을 조율 중이다. 이 약정이 체결되면 한국 정부에 세금을 내지 않은 체납인의 일본 재산을 국적에 상관없이 한국 정부가 압류해 세금으로 거둘 수 있다.

정부는 일단 국내 재산이 없어 세금을 추징하지 못했던 ‘선박왕’ 권혁 시도그룹 회장의 일본 재산을 압류해 수천억원의 체납액을 징수할 계획이다.

권 회장은 국내에 근거지를 두고도 탈세 목적으로 조세회피처에 머무르며 사업하는 것처럼 속여 수천억원의 세금을 내지 않은 혐의로 2011년 국세청으로부터 4101억원을 추징당했다.

당시 국세청은 권 회장의 우리은행 해외 지점 예금 485억여원을 압류하려고 했다. 하지만 홍콩 등 해외 법원은 한국 정부의 징수권이 자국에는 미치지 않는다며 우리은행의 예금 압류를 막았다.

국세청은 국내 은행의 해외 지점에 대해선 해외 법원의 결정에 상관없이 본점이 체납자의 해외 예금만큼 정부에 대신 줘야 한다며 우리은행에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지난 1월 대법원이 한국 정부의 징세권은 국내에만 적용된다는 확정 판결을 내려 정부는 세금 징수에 실패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일본과 징세권을 공유하면 권 회장의 일본 보유 재산을 확인해 압류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한국 국세청이 일본 국세청에 요청하면 일본 세무 공무원이 대신 관련 업무를 집행하고 거둔 체납액을 한국 정부에 송금해주는 방식이다. 반대로 일본 국세청이 한국 국세청에 요청할 경우 같은 업무를 한국 공무원이 대신 처리해준다. 정부 관계자는 “큰 틀에서는 일본과 이견이 없기 때문에 이르면 상반기에 약정문을 체결하고 징수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일본과 이번 약정 체결을 계기로 징수권 공유 국가를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국세청은 2012년 발효된 ‘다자간 조세행정공조협약’에 따라 50여개국과 조세 공조 협정을 맺었지만 단순 정보 공유에 그치고 있다. 국세청이 역외 탈세 정보를 확보해도 실제 해외에서 세금을 추징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체납자가 자진해서 해외 재산을 매각하고 세금을 내지 않으면 강제로 추징할 방법이 없었다.

지난해 수백억원의 세금을 내지 않고 대신 일당 5억원의 노역형을 살아 ‘황제 노역’ 논란을 일으켰던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도 정부가 끝내 해외 재산을 압류하지 못했다.

이번 징수권 공유는 지난해 일본 측에서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최근 아시아 지역 국가들과 징수 공조를 확대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세수 부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역외 탈세를 잡기 위한 징수권 확대는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