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세금 안내는 사람 vs 내는 사람
누구도 세금이 늘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싫다고 안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과세의 형평성과 공정성은 필수다. 이는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기도 하다.

역대 정부마다 면세자 비율을 낮추려고 애쓴 것도 그래서다. 물론 당연하고 옳은 방향이다.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게 세제의 대원칙이다. 실제 근로소득세 면제자 비율은 하향 추세를 보여왔다. 면세자 비율은 2009년(40.3%) 이후 30%대로 낮아졌고, 그 후에도 2011년 36.1%, 2012년 32.7%로 계속 떨어져 2013년엔 31.3%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이런 추세가 2014년에 다시 상향세로 역전됐다. 기획재정부가 근로자 1619만명의 올 연말정산 신고분을 전수조사한 결과 면세자가 2013년 512만명에서 2014년 700만명에 육박해 면세자 비율이 40%대로 치솟았다는 것이다. 2013년 세제 개편으로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연소득 2500만원 이하는 물론 2500만~4000만원 근로자까지 상당수가 새로 과세 미달자에 추가됐기 때문이다.

근로자의 50%가 면세자라니

문제는 면세자가 앞으로 더 늘 것이란 점이다. 기재부와 새누리당이 합의한 소위 연말정산 보완 대책이 시행되면 면세자가 800만명을 넘어 면세자 비율이 50%에 육박할 것이 확실시된다. 전체 근로자의 50%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는 얘기다. 급여에서 차지하는 세금의 비율인 실효세율은 연소득 5500만원 이하 근로자(1.16%)와 연 7000만원 초과 근로자(11.84%) 간에 10배나 차이가 나게 된다.

역대 정부가 쌓은 공든 탑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세제의 폭력이다. 50%가 안 내는 세금이라면, 그런 세금을 내는 다른 근로자에겐 징벌일 뿐이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득세 비율이 3.6%(2010년 기준)로 세계 최하위권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치(8.4%)의 절반도 안 된다. 높은 면세자 비율이 결정적인 원인이다. 이미 한국의 면세자 비율은 미국(32.9%, 2012년 기준) 호주(23.1%) 캐나다(22.6%) 독일(19.8%) 일본(15.8%)보다 훨씬 높다. 소득세 상위 10%가 86%의 세금을 부담하는 편향적인 세수 구조가 고착되고, 조세부담률을 올리고 싶어도 못 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판에 한국 세제는 역주행하고 있다. 국제사회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아도 할 말이 있을 게 없다.

세금을 징벌화하는 이런 세제

비과세·감면 축소·폐지는 물 건너간 형국이다. 지난해 일몰을 맞은 53개 중 축소·폐지한 것이 고작 14개로 26%에 불과했다. 현재 비과세·감면이 총 229개나 되고, 이 중 올해 일몰이 도래하는 것도 88개에 달하지만, 달라질 게 없다. 연말정산 보완 대책만 해도 근로소득 세액공제 확대 등 5개를 오히려 더 신설·확대하고 있으니 그렇다. 증세 없이 비과세·감면 축소·폐지로 2017년까지 18조원을 만들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공약가계부는 이렇게 폐기돼간다.

연말정산 괴소동이 결국 오류로 판명났건만, 늘어나지도 않은 세부담을 줄여주겠노라며 감세를 선동한다. 정부조차 이런 저질 정치를 말려도 될까말까 하는 판에 맞장구다. 세수는 부족한데 세제는 누더기가 돼 세금을 징벌화한다.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국민은 허탈해진다. 세금이 무섭다는 것을 모른다. 세금을 낸 적이 없는 사람이 국회에 너무 많다.

문희수 논설위원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