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성완종 리스트’로 수십년 구태 정치의 민얼굴이 다시 드러났다. 현직 총리까지 수사선상에 올랐다. 은밀한 거래는 건넸다 하면 억대였다. 성완종 스캔들을 단지 단발성 불법 정치자금 사건으로만 볼 수 없다. 이 범죄 목록에서는 여야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실관계를 자살자의 메모만으로 파악할 수는 없다. 마지막 순간의 통화내용이 모두 진실이라고 믿을 수도 없다. 보복은 보복이요 사실은 사실이다. 거액의 회사자금을 불법으로 빼낸 부실 기업인의 주장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연성은 충분하다. 지금 상황에선 검찰이 엄정한 수사로 의혹을 하나하나 밝혀내길 바랄 뿐이다. 국정의 향방이, 썩은 정치를 개혁하는 일이 검찰 손에 달렸다. 참담한 형국이지만 다른 대안도 없다. 정치는 이미 스스로를 개혁할 능력을 상실해 버렸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한국 정치는 무소불위의 특권지대였다. 입법만능으로 내달려온 국회의 독주는 그런 후진 정치의 결과물이다. 정치는 한국의 이권구조에서 항상 최상위 포식자였다. 통제받지 않는 파워그룹이고 견제도 안 되는 예외지대였다. 입법독재의 정치는 더 이상 자발적 개혁이 불가능한 지경에까지 왔다. 군림 정치, 고비용 정치, 패거리 정치, 포퓰리즘, 이 모든 적폐가 성완종 스캔들에 다 들어 있다.

검찰이 할 일은 명확하다. 국민만 바라보며 팩트를 따라 전진하는 길뿐이다. 특별수사팀에 대한 김진태 총장의 ‘진인사대천명’ 주문이 진지하게 들리는 이유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가겠다”는 수사팀의 각오도 흔들려선 안 된다. 30명이든 50명이든, 그가 누구이든 사법처리할 대상이면 결코 예외가 없어야 한다. 적당히 타협해 시범 케이스만 당했다는 식으로 끝나선 안 된다.

고 성완종 씨가 이례적으로 노무현 정부 때 두 차례나 사면된 배경을 밝히라는 여론의 요구도 마찬가지다. 수사팀도, 검찰총장도,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도 진실을 피할 수는 없게 된 상황이다. 어떤 경우든 정면 대응한다는 용기가 꼭 필요하다. 차라리 부조리의 뿌리를 캐내는 절호의 기회라고 볼 수도 있다. 오로지 사실만이 근거가 될 뿐이다. 진실은 직면해야 새로운 정치가 열린다. 정권의 나약함이 한국 정치를 결국 부패와 부조리의 괴물로 만들어 왔다.

정치가 어쩌다 이렇게 악취 덩어리가 됐느냐고 새삼 한탄할 것도 못 된다. 수뢰 범죄자가 총리와 장관 인사청문회를 주도하고, 정치자금법 전과자가 공당의 중진이라며 큰소리 쳐온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국회의원들은 낯 뜨거운 위증 혐의자나 길거리 투쟁가들로 채워졌다. 점차 저질화 경향을 보여왔던 것이다. 결국 검찰이 버거운 짐을 떠안게 됐다. 검찰도 한통속이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인가. 정치개혁으로 가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