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정치침몰'…세월호 1년, 못 벗어난 후진성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성완종 사태'로 개혁위기
규제·특혜 악순환 여전
도덕성·신뢰기반 무너져
규제·특혜 악순환 여전
도덕성·신뢰기반 무너져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온 나라가 바다의 재앙 못지않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정경유착으로 덩치를 불린 한 기업인이 작성한 ‘뇌물 공여 리스트’가 사회를 뒤흔들고, 외신의 웃음거리가 됐다. 법치와 시스템 대신 불법과 편법이 판치는 대한민국의 후진성이 불러온 재앙이다.
세상을 떠나며 남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메모 한 장에 한국 정치의 후진성이 그대로 묻어난다. 혈연이나 지연 학연 등을 통한 청탁이 통하고, 불법 정치자금이 여전히 횡행하는 우리 정치의 민낯이다. “정경유착의 밑바닥엔 불합리한 규제와 관치금융이 자리하고 있다”(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각종 규제를 풀기 위해 정치권에 줄을 대고, 정치권력을 동원하는 특혜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다.
정치인과의 돈독한 인맥으로 기업을 키우려 했던 기업인의 ‘검은돈 리스트’에 현직 총리와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등 현 정부 실세들이 줄줄이 엮였다. 정권의 도덕성과 신뢰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져내리는 상황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4일(현지시간) “부정부패 척결을 외친 총리가 정치자금 수수 혐의 당사자로 떠오르면서 정치 불신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정 운영의 미숙함도 그대로 드러났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경제 활성화’를 외쳤다. 각종 규제 완화 등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데 온 힘을 쏟아도 모자랄 판에 갑자기 ‘대대적인 기업 사정’을 들고나왔다. 국정 기조는 하루아침에 경제 활성화 국면에서 사정 국면으로 넘어갔다.
법치 대신 불법 판치는 한국…규제·특혜가 후진성의 뿌리
‘성완종 리스트’는 규제가 많고 특혜가 여전한 현실에서 예전보다 힘이 세진 국회 권력의 이면을 그대로 보여줬다. “정치권 줄대기와 이를 통한 관가 로비로 기업을 키울 수 있다”고 믿는 풍토가 낳은 비극적 결말이다.
성 전 회장이 기업을 키운 건 극적이었다. 도급순위 169위로 기술력이나 브랜드 파워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대아건설이 10여년 만에 72위로 치고 올라갔다. 충청도에서 발주한 관급공사를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8월 경남기업을 인수하면서 일약 전국적 인물로 부상했다.
2009년엔 베트남 하노이에 1조2000억원을 투자해 ‘랜드마크 72’라는 빌딩을 지었다. 우리은행 등에서 거액의 대출을 받아 추진한 무리한 사업이었다.
회 사가 어려워지자 성 전 회장은 은행에 추가 대출 압력을 넣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든든한 ‘빽’은 정치권이었다. 경남기업이 워크아웃에 세 번씩 들어가는 특혜를 받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금융 당국자들을 압박하며 거들었다고 한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성 전 회장이 당시 금융당국자들에게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했다”며 “고위 금융당국자가 은행 여신담당 임원들을 불러 압박했다”고 말했다.
성 전 회장은 기업인이라기보다는 정치인에 가까웠다. 정치권의 영향력이 있는 중진 의원들을 집중 관리했다. 총리 등 정치권 실세 8명의 리스트는 그 결과물이다. 총선과 대선 때 핵심 인사들에게 정치자금을 줬을 개연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충청도 관급공사 ‘싹쓸이 수주’와 대아건설의 급성장, 경남기업 인수 등 성 전 회장의 급성장 배경에는 정치권의 인맥관리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관치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 한 ‘제2의 성완종’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
사정정국 속에 당초 내세웠던 경제 활성화는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기초가 튼튼한 경제, 역동적인 혁신 경제, 내수와 수출 균형 경제 등을 핵심으로 하는 경제활성화 3개년 계획은 사정정국에 묻혀버렸다.
노동 공공 교육 금융 등 4대 부문 구조개혁도 가물가물하다. 고용 유연성을 핵심으로 한 노동개혁은 일단 물 건너갔다. 노·사·정 대타협은 무산됐다. 협상 자체가 기업들에 부담을 떠넘기는 식의 논의에 집중됐다.
반드시 해내겠다던 공무원 연금개혁도 야당과 노조에 시종 끌려다니고 있다. 국회 공무원연금 개혁특위는 5월1일 개혁안을 의결하기로 했지만 합의 전망은 극히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계는 대규모 춘투에 나선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연대하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공무원노조도 가세한다. ‘정치 침몰’로 경제가 다시 기로에 섰다. “지난 2년을 경제 민주화와 세월호로 국력을 소모한 정부가 3년차인 올해 또다시 ‘성완종 리스트’에 발목이 잡히면 한국 경제의 앞날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미숙한 국정운영과 정치권 특혜의 폐해 등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각 분야의 후진성이 대한민국을 총체적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이재창 부국장 겸 지식사회부장 leejc@hankyung.com
정치인과의 돈독한 인맥으로 기업을 키우려 했던 기업인의 ‘검은돈 리스트’에 현직 총리와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등 현 정부 실세들이 줄줄이 엮였다. 정권의 도덕성과 신뢰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져내리는 상황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4일(현지시간) “부정부패 척결을 외친 총리가 정치자금 수수 혐의 당사자로 떠오르면서 정치 불신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정 운영의 미숙함도 그대로 드러났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경제 활성화’를 외쳤다. 각종 규제 완화 등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데 온 힘을 쏟아도 모자랄 판에 갑자기 ‘대대적인 기업 사정’을 들고나왔다. 국정 기조는 하루아침에 경제 활성화 국면에서 사정 국면으로 넘어갔다.
법치 대신 불법 판치는 한국…규제·특혜가 후진성의 뿌리
‘성완종 리스트’는 규제가 많고 특혜가 여전한 현실에서 예전보다 힘이 세진 국회 권력의 이면을 그대로 보여줬다. “정치권 줄대기와 이를 통한 관가 로비로 기업을 키울 수 있다”고 믿는 풍토가 낳은 비극적 결말이다.
성 전 회장이 기업을 키운 건 극적이었다. 도급순위 169위로 기술력이나 브랜드 파워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대아건설이 10여년 만에 72위로 치고 올라갔다. 충청도에서 발주한 관급공사를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8월 경남기업을 인수하면서 일약 전국적 인물로 부상했다.
2009년엔 베트남 하노이에 1조2000억원을 투자해 ‘랜드마크 72’라는 빌딩을 지었다. 우리은행 등에서 거액의 대출을 받아 추진한 무리한 사업이었다.
회 사가 어려워지자 성 전 회장은 은행에 추가 대출 압력을 넣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든든한 ‘빽’은 정치권이었다. 경남기업이 워크아웃에 세 번씩 들어가는 특혜를 받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금융 당국자들을 압박하며 거들었다고 한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성 전 회장이 당시 금융당국자들에게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했다”며 “고위 금융당국자가 은행 여신담당 임원들을 불러 압박했다”고 말했다.
성 전 회장은 기업인이라기보다는 정치인에 가까웠다. 정치권의 영향력이 있는 중진 의원들을 집중 관리했다. 총리 등 정치권 실세 8명의 리스트는 그 결과물이다. 총선과 대선 때 핵심 인사들에게 정치자금을 줬을 개연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충청도 관급공사 ‘싹쓸이 수주’와 대아건설의 급성장, 경남기업 인수 등 성 전 회장의 급성장 배경에는 정치권의 인맥관리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관치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 한 ‘제2의 성완종’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
사정정국 속에 당초 내세웠던 경제 활성화는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기초가 튼튼한 경제, 역동적인 혁신 경제, 내수와 수출 균형 경제 등을 핵심으로 하는 경제활성화 3개년 계획은 사정정국에 묻혀버렸다.
노동 공공 교육 금융 등 4대 부문 구조개혁도 가물가물하다. 고용 유연성을 핵심으로 한 노동개혁은 일단 물 건너갔다. 노·사·정 대타협은 무산됐다. 협상 자체가 기업들에 부담을 떠넘기는 식의 논의에 집중됐다.
반드시 해내겠다던 공무원 연금개혁도 야당과 노조에 시종 끌려다니고 있다. 국회 공무원연금 개혁특위는 5월1일 개혁안을 의결하기로 했지만 합의 전망은 극히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계는 대규모 춘투에 나선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연대하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공무원노조도 가세한다. ‘정치 침몰’로 경제가 다시 기로에 섰다. “지난 2년을 경제 민주화와 세월호로 국력을 소모한 정부가 3년차인 올해 또다시 ‘성완종 리스트’에 발목이 잡히면 한국 경제의 앞날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미숙한 국정운영과 정치권 특혜의 폐해 등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각 분야의 후진성이 대한민국을 총체적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이재창 부국장 겸 지식사회부장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