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약 판매 지연땐 부당이익 환수" vs "특허권 침해…유례없는 과잉입법"
정부가 다국적 제약사의 특허권 남용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특허권을 이용해 복제약 출시를 지연시킬 경우 복제약 판매가 늦어진 기간에 팔린 오리지널 약값의 30%를 강제로 환수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유례없는 과잉입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복지부 “ 개정안 이달 중 처리”

보건복지부는 다국적 제약사의 특허권 남용을 제약하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놓고 이달 중 처리를 추진하고 있다. 이 법안은 오리지널 제약사와 복제약 제약사 간 특허소송에서 오리지널 제약사가 패할 경우 ‘판매금지 기간’(최장 9개월)에 오리지널 의약품 약값의 30%를 환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복지부가 다국적 제약사의 특허권 남용에 제동을 걸고 나선 배경은 지난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허가·특허연계제도’ 때문이다. 이 제도에 따라 복제약 업체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품을 등록하면 오리지널 제약사는 최장 9개월 동안 판매 중단을 요청할 수 있다.

복지부가 문제 삼는 대목은 오리지널 제약사가 실제 특허 침해 여부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판매 중단을 요청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선영 복지부 보험약재과장은 “실제로 복제약이 특허를 침해했는지 여부를 판단하지 않은 채 오리지널 제약사가 요청하면 기계적으로 판매 중단시킬 수 있는 게 맹점”이라고 설명했다.

이 경우 오리지널 제약사의 특허권 남용이 건강보험재정 손실로 이어진다는 게 복지부 논리다. 복제약이 출시되면 오리지널 의약품 가격은 자동으로 30% 인하되기 때문이다. 판매금지 조항을 악용하면 다국적 제약사는 최장 9개월 동안 약값 인하를 늦출 수 있는 반면 건강보험재정에는 그만큼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다국적 제약사 “정당한 권리 제한”

다국적 제약사들은 비상이 걸렸다. 그만큼 파괴력이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연간 1200억원어치가 팔리는 오리지널 의약품이 복제약과의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9개월 동안 약값의 30%인 270억원을 징수당할 수 있어서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약가 인하분을 강제로 환수하는 법안은 허가·특허연계제도의 취지를 유명무실화할 뿐 아니라 특허권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과잉입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자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특허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고 일률적으로 특허권 남용으로 간주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배시내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 이사는 “특허 소송 패소만으로 손실을 본 것으로 간주해 환수하는 것은 특허권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위축시킬 수 있어 위헌 소지가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특허 패소만으로 건강보험공단의 손실을 특허권자에게 징수하는 것은 향후 통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비슷한 제도를 도입한 호주의 사례를 들어 약값 환수를 ‘고의성이나 중대 과실이 있는 경우’로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배 이사는 “개정안은 허가·특허 연계제도 자체를 유명무실화하는 것으로 입법 취지를 감안하더라도 과잉입법에 해당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강제 환수 조항은 삭제되거나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허가·특허연계제도

복제약 제조사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약품을 등록하면 오리지널 제약사(주로 다국적 제약사)가 최장 9개월간 판매를 중지시킬 수 있는 ‘판매금지권리’를 부여하는 제도. 대신 복제약 제조사가 특허소송에서 이기면 9개월의 ‘우선판매권리’를 갖는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