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타고 둘레길서 봄맞이 "세상 밖 달릴 자신감 생겼어요"
지난 17일 오전 10시 서울 신도림동 지하철 2호선 도림천역 1번 출구 앞. 서울둘레길 안양천으로 진입하는 길목인 이곳에 형형색색의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들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인근 구로구와 영등포구에 있는 직업재활시설과 복지관에서 생활하고 있는 장애인으로, ‘서울둘레길, 오감으로 느끼다’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안양천을 찾은 것이다.

서울시가 주최하고 한국경제신문이 후원한 이번 행사는 157㎞ 순환형 코스인 서울둘레길의 매력을 시민에게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다음달 16일까지 총 5회에 걸쳐 열린다. 이날 안양천에서 처음 열린 행사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거동이 불편해 외출이 쉽지 않은 장애인 30여명에게 서울둘레길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 장애를 입은 가수 강원래 씨도 행사에 참여했다. 이날 행사는 다섯 가지 오감(五感) 중 ‘촉각으로 만나는 소통의 길’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서울시는 외부의 편견에 상처 입은 장애인이 자연을 느끼며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자는 차원에서 이 같은 이름을 붙였다.

안양천은 서울둘레길 8개 코스 중 가장 경사가 완만하고 평탄한 지형이다. 휠체어를 타고도 이동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은 낮은 경사길조차 이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번갈아 나올 때면 곳곳에서 탄식이 쏟아졌다. 내리막길을 이동할 때는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힘겹게 휠체어로 ‘S자’를 그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참가자들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지적·발달장애인들은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환하게 웃으며 서로 손을 잡고 의지하면서 길을 걸었다.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행복한나무’에서 일하는 이모씨(47·발달장애 3급)는 “오랜만에 강변을 따라 걸으며 바람을 쐬니 기분전환도 되고 좋다”며 “처지가 비슷한 다른 장애인과 만나 이야기하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휠체어를 탄 강씨는 다른 장애인을 일일이 격려하며 길을 앞장섰다.

둘레길 옆으로는 녹색으로 뒤덮인 무성한 갈대와 풀 사이로 맑은 안양천이 흐르고 있었다. 안양천은 1990년대만 하더라도 공장 폐수와 생활하수 등으로 죽은 하천이었다. 지금은 숭어와 참게, 멸종위기에 몰린 맹꽁이가 서식할 정도로 깨끗한 수질을 자랑한다. 장애인들은 서울둘레길 조성과 함께 자연생태하천으로 바뀐 안양천에 대해 시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며 연신 감탄했다.

도림천역에서 안양천 제방 산책로를 따라 10분쯤 걷자 길 양쪽으로 수많은 벚꽃 나무들이 마치 터널처럼 참가자들을 감쌌다. 왕벚나무 900그루가 심어져 있어 안양천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벚꽃길이다. 장애인들은 바람에 날려 머리 위로 떨어지는 하얀 벚꽃에 연신 탄성을 지르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구로구 구립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일하는 이택준 씨(41·지체장애 2급)는 “외부의 시선 때문에 평소엔 이렇게 바람 쐴 일이 별로 없다”며 “기회만 있으면 이 같은 행사에 참석하려 애쓰고 있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이날 안양천 3.5㎞를 두 시간 동안 걸은 다음 도시락으로 식사를 하고 강씨의 특별강연을 들은 뒤 행사를 마무리했다.

서울시는 다음달 16일까지 대모·우면산 코스, 고덕·일자산 코스 등 다른 서울 둘레길 코스를 걷는 행사를 연다. 참여를 원하는 시민은 ‘오감으로 만나는 서울둘레길’ 행사 홈페이지(event.hankyung.com)에서 신청하면 무료로 참석할 수 있다. 070-4423-7144, (02)360-4517

김동현/강경민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