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증시의 동반 강세로 일부 주식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원금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말썽이 된 것은 기초자산으로 활용되는 지수가 일정 범위 이상 오르지 않아야 약속된 원리금을 받을 수 있는 이른바 ‘스텝업’ 상품이다.

◆‘스텝업’ 상품의 비극

강세장의 역설, 올라도 너무 올랐네…스텝업 ELS, 500억 넘게 원금손실
20일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닛케이225와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를 기반으로 발행된 스텝업 ELS는 860억원어치에 달한다. 증권업계에서는 이미 손실구간에 진입, 원금 손실이 확정된 물량만 500억원어치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 물량이 정상적으로 상환되려면 닛케이225와 HSCEI가 40~50%가량 조정받아야 하는 만큼 사실상 원금 회복이 어렵다는 진단이다. 아직 손실구간에 진입하지 않은 360억원어치 물량도 두 지수가 조금 더 오르면 원금을 떼일 수 있다.

스텝업 ELS는 지난해 투자자들 사이에 인기를 끈 틈새상품이다. 지수가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해야 원리금을 받을 수 있는 ‘스텝다운 ELS’보다 좋은 조건에 끌린 투자자들이 신상품 쪽으로 투자처를 바꿨다. 통상 3년인 만기를 1년6개월 안팎까지 줄이고, 이자도 스텝다운 ELS보다 연 기준으로 1%포인트가량 높인 게 스텝업 상품의 공통된 특징이다.

◆‘반토막’ 상품 속출

강세장의 역설, 올라도 너무 올랐네…스텝업 ELS, 500억 넘게 원금손실
문제는 지난해부터 일본과 홍콩 증시가 무서운 속도로 올랐다는 데 있다. 지난해 상반기 저점과 올해 고점을 비교하면 닛케이225지수는 44.08%, HSCEI는 60.70% 상승했다. 이례적인 글로벌 증시 약진이 박스권이 길어질 것으로 판단한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힌 셈이다.

이중호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최근 판매된 스텝업 상품은 만기가 짧은 대신 지수 상승폭을 40%까지만 허용하는 빡빡한 조건을 내걸었다”며 “지수가 50% 이상 빠져도 원리금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 흔한 스텝다운 ELS와 비교할 때 조건 자체가 훨씬 더 위험했다”고 말했다.

스텝업 상품은 스텝다운 상품에 비해 원금을 더 많이 떼이는 경우가 많다. 하락장에서는 상장사의 청산가치를 감안한 저가 매수세에 힘입어 지수가 일정 수준 이상 빠지기 어렵다. 하지만 상승장엔 ‘천장’이 없다는 게 증권가의 중론이다.

D증권사가 지난 14일 내놓은 닛케이225지수 연계 스텝업 상품의 현재 시점 원금 손실률은 41% 안팎이다. 계약시점 지수인 13,960.05와 현재 지수를 비교해 지수가 오른 폭만큼 원금이 사라진다. 문제는 이 지수가 더 올랐을 때다. 현재 19,600 안팎인 닛케이225가 만기 시점인 오는 10월13일 23,700까지 오르면 원금의 70%가 없어진다. 지수가 27,920까지 오를 경우 원금 전체를 날리게 된다.

■ 스텝업 ELS

ELS 기초자산인 지수나 개별 종목 주가가 계약 시점보다 40~50% 이상 오르지 않아야 약속된 원리금을 받는 상품. 기초자산의 가격이 40~50% 이상 떨어지지 않을 때 원리금을 받는 일반 ELS 상품과 수익구조가 정반대다. 이 상품은 글로벌지수가 박스권에 갇힌 지난해 상반기 집중적으로 발행됐다. 최근 1년간 50% 안팎의 상승률을 나타낸 일본 닛케이225, 홍콩 HSCEI를 기초자산으로 활용한 상품이 많았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