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에 참전해 영연방 최고 무공 훈장인 ‘빅토리아 크로스’를 받은 윌리엄 스피크먼 예비역 하사가 21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전사자 명비에 헌화하기에 앞서 국화 향을 맡고 있다. 스피크먼은 이 훈장을 포함해 자신이 받은 10개의 무공훈장과 메달을 한국 정부에 기증했다. 연합뉴스
6·25전쟁에 참전해 영연방 최고 무공 훈장인 ‘빅토리아 크로스’를 받은 윌리엄 스피크먼 예비역 하사가 21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전사자 명비에 헌화하기에 앞서 국화 향을 맡고 있다. 스피크먼은 이 훈장을 포함해 자신이 받은 10개의 무공훈장과 메달을 한국 정부에 기증했다. 연합뉴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멋지게 재건한 한국에 기여하고 한국인에 대한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23년간 군복무 중 받은 훈장과 메달 10개를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6·25전쟁의 영웅으로 국가보훈처의 초청을 받아 방한한 윌리엄 스피크먼 예비역 하사(88)는 21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날 오후 7시 동대문 JW메리어트호텔에서 박승춘 보훈처장에게 훈장과 메달을 기증했다.

스피크먼은 1951년 7월 왕립 스코틀랜드수비대 1연대 이등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그해 11월 마량산 전투에서 용맹을 떨친 공을 인정받아 영국연방 최고 무공훈장인 ‘빅토리아 크로스(VC)’를 받았다.

그는 부대가 적군의 공격을 받아 고지가 적의 손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무전으로 듣고 전투복에 수류탄을 가득 채운 뒤 적진으로 달렸다. 그는 “중국군을 향해 4~5시간 동안 수류탄을 던졌다”며 “적의 박격포 공격과 소총 응사가 이어지면서 다리에 부상을 당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전우들은 그가 10개 이상의 반격임무를 이끌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전우와 함께 6000여명의 중국군과 대적했다”며 “전투에서 숨져 유엔군묘지에 안장된 5명의 전우가 지금도 생각난다”고 말했다.

부상에서 회복한 그는 1952년 2월 영국 런던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VC훈장을 받았다. 일약 유명인사가 된 그는 영국에서 외출할 때마다 많은 기자에게 둘러싸이고 여러 행사에 참석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자신이 마치 영화배우처럼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그는 영국 육군 간부들에게 “한국에 다시 가도록 해달라”고 요청해 그해 4월 6·25전쟁에 재참전, 8월까지 한국에서 적과 싸웠다.

스피크먼은 6·25전쟁으로 VC훈장을 받은 4명 중 유일한 생존자로, 이날 휠체어에 탄 채 기자회견에 임했다. 그가 한국 정부에 기증한 메달과 훈장은 전쟁의 참상과 교훈, 자유·평화의 소중함을 청소년에게 알리기 위해 영연방 참전용사들이 매년 방문하는 부산 유엔군묘지 인근 유엔평화기념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그의 방한은 이번이 네 번째다.

스피크먼은 “군인이라면 항상 자기가 싸웠던 전장을 생각한다”며 “앞으로 내가 죽으면 내 유해를 한국으로 갖고 와 이곳에서 영면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올 때마다 감동을 주는 한국, 한국인과 함께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북한에 대해 “북한이라는 나라 자체가 하나의 끔찍한 재난”이라며 “북한이 현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길 바라며 한국과 북한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국가로 통일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승욱 선임기자 s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