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나와 한·미 FTA협상 참여
7대1 경쟁률 뚫어 "어깨 무겁다"
아이들에게 자랑스런 아빠 될 것
신 과장은 경영학을 전공한 학부 시절 통상 쪽에 눈을 떴다. 고민 끝에 미국 로스쿨(밴더빌트대)을 선택했다. 그는 “통상을 하기 위해선 경제와 법을 동시에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인생의 바꾼 계기”라고 말했다.
2005년 로스쿨을 졸업한 신 과장은 당시 산업자원부의 전문관 채용에 응시했다. 진행 중이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한국 정부의 유일한 변호사로 참여했다. 이후 한·유럽연합(EU) FTA 등 다른 FTA 협상에 참여했고, 무역위원회 조사관 등을 거치며 2012년까지 산업부에서 근무했다. 공직생활이 처음은 아니다.
이후 3년간 김앤장에 몸담았다. 그는 “주로 한국 기업의 무역구제와 반덤핑 제소 등에 대한 법률 검토와 자문을 맡았다”며 “줄곧 정부에 있었다면 기업들을 더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이번 개방형 직위 공모에 응한 이유다.
신 과장은 공무원으로 전향한 뒤 연봉이 3분의 1로 줄었다. 처음엔 가족들 특히 아내의 반대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용돈을 줄이면 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아빠를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아내를 설득했다.
신 과장은 “국제 통상 현장을 겪어보니 불이익을 받았을 때 감정에 호소하는 것보다 국제법상 논리를 기반으로 상대국을 설득하면 오히려 쉽게 해결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미국 정부는 통상 부문에 100여명의 변호사가 있는데, 한국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를 개선하는 데 노력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신 과장은 3년 계약직이다. 2년 더 연장이 가능하다.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되면서 퇴직 후 3년간 해당 분야(변호사)에서 활동할 수도 없다. 신 과장은 “그럴 가능성은 알았지만 감수하고 들어온 것”이라고 했다. 그의 꿈은 국제기구에서 한국을 대표해 통상업무를 책임지는 것이다.
글=김재후/사진=김병언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