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위협 요인인 가계빚과 미국 금리 인상 문제를 놓고 한국은행이 본격적인 방비에 나서기로 했다. 가계빚 증가 속도가 경제성장세를 추월한 데다 미국 금리 인상의 충격파도 적지 않을 수 있다는 진단에서다. 통화정책의 무게중심이 성장에서 금융시장 안정으로 옮겨갈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주열 한은 총재(사진)는 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미 경제가 예상보다 빠르게 개선될 경우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시점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다”며 “(국내시장이)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환율·금리·주가의 급등락 등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Fed는 지난해 10월 양적 완화를 종료한 뒤 금리 인상 등 통화정책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금리가 오르면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 금리와 격차가 줄어든다. 고금리를 찾아 신흥국에 투자했던 외국인들이 자금을 빼가면서 원화가치와 주가가 급락할 수 있다.

미국 고용지표가 예상보다 부진한 만큼 미 금리 인상은 빨라야 오는 9월께 이뤄질 것으로 시장에선 내다보고 있다. 이대로라면 외환보유액 등이 충분한 한국의 경우 국내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감내 가능’하다는 게 한은의 진단이다.

문제는 시장 예상과 달리 그 이전에 미 금리 인상이 단행될 경우다. 이 총재는 “그리스 문제 등 다른 위험과 맞물리면 영향이 커질 수 있다”며 “외환시장 점검반을 통해 시장 점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외환건전성 정책수단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주요국과 통화스와프 활용도도 높이겠다고 덧붙였다.

한은은 가계부채 문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 증가세가 소득 증가 속도를 계속 웃돌고 있다”며 “자칫 취약계층의 자산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에 따르면 가계부채 증가율은 2011년부터 4년 연속으로 경제성장률을 웃돌았다. 지난해 말 가계부채는 1089조원으로 전년 말보다 6.6% 급증했다. 물가 상승분이 포함된 경제성장률(명목GDP 증가율) 3.9%를 크게 앞질렀다.

올 들어선 대출금리가 낮아지고 주택거래가 늘면서 가계빚이 더 빠르게 늘고 있다. 가계부채 증가세가 경제 성장이나 가계소득 증가 속도보다 빠르면 소비를 짓누를 수 있다.

이 총재는 “다만 가계의 자산이 빚보다 많고 연체율 역시 낮다”며 “가까운 시일 안에 가계부채 문제가 시스템리스크로 현실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지난달 구축한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DB)를 최대한 활용하는 한편 ‘거시 금융안정상황 점검회의’와 ‘가계부채 점검반’에서 위험요인을 점검하기로 했다.

한은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1.75%로 내린 뒤 이달엔 기존 금리를 유지했다. 가계부채 등 금융 불안 요인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김유미/황정수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