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분양물량 폭탄' 걱정된다
대형 건설회사 J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안에 묵은 사업장 10개 중 8개를 털어내겠다”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 부동산시장 활황기 때 땅을 샀다가 금융위기를 맞은 뒤 장기간 이자만 물면서 전전긍긍하던 사업장들이다. 분양시장 활황을 맞아 ‘문제 사업장’을 정리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면서도 그는 “올해 건설사들이 아파트 분양물량을 너무 많이 쏟아낸다”고 걱정했다. “이대로라면 2002년 32만5000여가구를 넘어 역대 최고인 40만가구 이상이 공급될 것”이라는 얘기다. 2~3년 뒤 ‘입주물량 폭탄’이 터지면 부동산시장이 다시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J사장의 말은 대형 건설사들의 고민을 잘 보여준다.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당장 급하기 때문에 분양물량을 쏟아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는 분양하지만 남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도 읽혀진다.

공급물량 사상 최대 기록할 듯

사실 건설회사들이 합심해 분양 속도를 조절하면 분양시장 활황세를 좀 더 오래 끌고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서로 먼저 물량을 털어내기 위해 경쟁을 펼친다.

요즘 건설회사 분양담당 임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기사는 분양물량 급증, 분양가 폭등을 지적하는 것이다. 분양물량이 지나치게 많고 분양가가 과도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건설회사들이 이런 상황에서 신규 프로젝트 수주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3만가구를 공급하기로 했던 D건설은 공격적으로 추가 수주를 진행해 올해 분양 예정물량을 3만5000가구 정도로 늘렸다. 이런 속도라면 올해 4만가구를 분양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금까지 한 회사가 한 해에 3만가구 이상 분양한 사례는 없었다. 한국주택협회가 과잉 공급과 분양가 인상 자제를 호소하고 나섰지만 약발은 거의 없다.

건설회사들이 땅 잡기 경쟁을 벌이다 보니 요즘은 땅을 가진 시행사(디벨로퍼)들이 건설사들의 ‘상전’이다. 시행사 사장이 방문하면 건설회사 사장이 영접하는 곳도 있다. 3년 전만 해도 시행사 사장은 시공사를 구하기 어려웠고 건설사 중간 간부를 만나기조차 쉽지 않았다. 시행사들은 “갑과 을이 바뀌었다”며 함박웃음이고, 건설회사 직원들은 떨떠름해 하고 있다.

2~3년뒤 입주물량 따져야

2~3년 뒤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후폭풍을 우려한다. 2007년과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분양가 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건설사들은 앞다퉈 ‘밀어내기 분양’에 나섰다. 경기 고양, 용인 등에서 중대형 아파트 수만 가구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결과는 참담했다. 주택시장이 장기 침체에 빠지는 빌미를 제공했다. 몇몇 시행사와 건설사들은 여기서 치명상을 입었다. 30~40% 할인분양까지 해봤지만 아직도 악성 미분양으로 남아 있다.

건설사들이 일감 부족 때문에 스스로 분양물량 조절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 국내 관급 공사 발주 물량이 갈수록 줄어들고, 경쟁이 심해진 해외 플랜트공사 수주도 만만치 않다. 믿을 건 주택밖에 없다. 2~3년 뒤 수익성보다는 눈앞의 실적이 급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청약자들이 똑똑해져야 한다. 분위기에 휩쓸려 ‘묻지마 청약’을 하는 건 도박이다. 2~3년 뒤 해당 지역 입주물량을 꼭 따져본 뒤 청약하자.

조성근 건설부동산부 차장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