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강수진의 야심작
의상 화려하고 심리 묘사도 극적
발레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첫 드레스 리허설(무대 의상을 입고 하는 연습)이 한창인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연습실.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이 직접 말안장에 올라타 가기 싫다고 떼를 썼다. 말에서 굴러떨어져 꼬리를 붙잡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끌려가기도 하고, 겨우 올라탄 말에서 뒤집어져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심통을 부리기도 했다. 강 감독이 주인공 카테리나 역의 시범을 보이자 이 역을 맡은 발레리나 이은원은 훨씬 더 능숙하게 인물의 심리를 표정과 동작으로 표현했다.
오는 29일부터 내달 3일까지 공연되는 국립발레단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강 감독이 발레 대중화를 위해 야심 차게 선택한 작품이다. 셰익스피어 원작을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안무가 존 크랑코(1927~1973)가 안무했다. 비극이 대부분인 발레 장르에서 몇 안 되는 희극 발레다.
2006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내한 공연에 이어 국립발레단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무대에 올린다. 1997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처음 카테리나 역을 맡은 강 감독의 대표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각색한 작품인 만큼 마임적 요소가 강하고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극적이다. 의상도 클래식 발레에 비해 화려하다.
“좀 더 스타카토로 표현해주세요.” “거기는 풍만하면서도 건들건들하게 해봐요.”
강 감독은 이날 리허설에서 직접 시범을 보이며 몸짓 하나하나를 지도했다. 중간중간 강 감독의 남편이자 슈투트가르트 무용수 출신인 툰치 소크멘도 안무 조언을 했다. 강 감독은 소크멘과 나란히 앉아 무용수들의 발동작 하나하나까지 상의했다. 배우들의 가죽 슈즈, 의상, 가발의 상태도 꼼꼼히 확인했다.
희극 발레답게 연습실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심통을 부리는 카테리나(이은원)의 모습에 무용수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페트루키오(이재우)와 카테리나가 마지막 2인무에 성공했을 땐 박수가 터져나왔다.
강 감독의 대표 레퍼토리를 공연하는 것에 대해 무용수들이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까. 카테리나 역을 맡은 수석무용수 김지영은 “예쁘고 청순한 비련의 여주인공만 연기하다가 이렇게까지 망가지는 모습을 연기하는 것은 18년 만에 처음”이라며 “감독님이 자신의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나만의 색깔을 입힌 카테리나를 만들어 가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강 감독에게 이번 공연에서 ‘강수진표 카테리나’를 뛰어넘는 카테리나를 만날 수 있을지 물었다. “물론이죠. 이야기 발레의 가장 큰 장점은 연기하는 사람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느껴질 정도로 개성을 살릴 수 있다는 거예요. 1997년 제가 왈가닥 카테리나를 통해 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듯이 이번에 연기하는 김지영, 신승원, 이은원 각각의 카테리나를 기대해 주셔도 좋습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