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으로 시작해 '유리천장' 깬 car girl…리콜 위기 극복하고 'GM 잔다르크' 로
2013년 12월10일 미국 디트로이트에 있는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의 본사. 임원 회의를 하던 중 댄 에커슨 회장이 자신의 퇴임 소식을 전하면서 차기 최고경영자(CEO)로 메리 바라 수석부사장이 내정됐다고 발표했다. 한 달 뒤인 2014년 1월15일 바라는 GM 사장으로 취임했다. 106년의 GM 역사상, 그리고 세계 자동차업계 사상 처음으로 여성 CEO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인턴사원으로 GM에 첫발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 GM이 수장으로 선택한 바라 CEO(53)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인턴사원으로 출발해 33년 만에 최고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10세 무렵 자동차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바라는 “사촌오빠가 운전하는 빨간색 카마로(쉐보레 스포츠카) 오픈카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다”고 회고했다. 또래 친구들이 패션과 이성에 관심을 쏟는 동안 바라는 자동차와 관련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GM의 폰티악 자동차 공장에서 39년간 일한 아버지로부터 기본적인 자동차 구조와 부품의 활용법을 배웠다. 친구들은 그런 바라에게 ‘카 걸(car girl)’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GM 부설 자동차 대학인 케터링대에 입학해 전기공학을 전공하면서 자동차에 대한 애정은 더욱 깊어졌다. 1980년 케터링대 재학 당시 인턴사원으로 아버지가 근무했던 폰티악 생산라인에서 처음으로 회사생활을 했다. 당시 그녀가 지원했던 인턴십은 ‘코-옵(co-op)’이라는 방식의 산학협력 프로그램으로, 학교에 회사와 똑같은 업무 환경을 만들어 놓고 직업훈련을 받는 것이었다. 바라는 남성 근로자들만 있는 곳에서 각종 잡무를 맡았던 당시 경험을 떠올리며 “여성은 물론이고 또래조차 찾아보기 힘든 환경에서 외롭고 힘들었다”며 “하지만 그 시간들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바라는 대학을 졸업한 뒤 말단 엔지니어로 GM에 입사했다.

입사 33년 만에 최고 자리에

입사 후 바라는 매일 오전 6시 이전에 출근하는 등 성실성과 겸손한 성격으로 경영진의 눈에 들기 시작했다. 아버지에 이어 2대째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GM 가족’이라는 점도 회사생활에 도움이 됐다. 로열티를 중시하는 GM의 풍토에 맞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경영자로서의 길을 걷게 된 건 1990년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석사(MBA)과정을 마치고 난 이후다. GM은 바라의 잠재 가능성을 높이 평가해 그녀가 MBA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장학금까지 지원했다. 이후 바라는 잭 스미스 전 GM CEO의 비서로 발탁됐는데 이것이 도약의 디딤돌이 됐다. 거기서 GM이라는 거대한 회사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넓은 시야에서 ‘경영의 세계’를 경험한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바라는 2009년부터 글로벌 인재관리(HR) 부문을 맡아 GM의 구조조정을 이끌면서 개발비용을 줄이는 등 회사의 변화를 주도했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녀는 생산 현장의 비효율과 개선 방안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2011년 초 개발 담당 부사장으로 승진해 자동차 모델별 담당 임원 수를 세 명에서 한 명으로 줄이는 한편 GM의 자동차 플랫폼 종류를 단순화하고 호환 부품 수를 줄여 생산성을 높였다. 이런 성과 덕분에 자동차 업계에서는 그녀를 ‘GM의 잔다르크’로 부른다.

GM 최대 위기 극복한 리더십

세계 언론은 바라가 GM CEO로 내정됐을 때 보수적인 자동차 업계에서도 여성의 승진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이 깨졌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GM 측은 “바라가 CEO가 된 것은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발휘한 탁월한 능력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바라는 자신의 성공 비결로 “좋아하는 일을 택한 것”을 꼽으며 “열정을 다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일을 통해 성장하라”는 부모의 조언이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그녀는 부모의 조언이 ‘인생 최고의 조언’인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우선 이 조언이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용기를 북돋아줬다고 말했다. 바라는 “나는 직장에서, 그리고 인생에서 정말로 똑똑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며 “하지만 재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재능도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돼야 빛을 발하며, 열정적인 노력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기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또 부모의 조언 덕분에 과학, 기술, 엔지니어링, 수학 등의 분야에 진출하는 여성들이 드물던 시절 자신이 엔지니어로서의 경력을 택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바라는 CEO로 데뷔한 지 1년도 채 안 돼 80차례, 총 3000만대 이상의 자동차 리콜이라는 악재를 맞아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처음 구형 세단과 크로스오버 차량에서 발견된 점화 스위치 결함은 자동차 에어백, 핸들, 브레이크 등 소형 부품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수도 없이 해명하고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주변에서는 GM이라는 거대 공룡이 창사 106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고 수군거렸다.

GM은 승용차 결함 때문에 사망한 40명 이상의 유가족들과 보상·소송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사고로 사망했거나 다친 피해자 소송도 51건에 이른다. GM은 또 지난해 5월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 조사 후 3500만달러의 벌금을 냈고, 아직도 법무부에서 관련 조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인 바라의 위기관리 능력은 탁월했다는 평가다. 그녀는 안전 및 품질에 대한 미 의회 조사보다 한 발 앞서 회사 측 안전 및 품질 관리에 문제가 있었다고 스스로 잘못을 인정했다. 그리곤 자체적으로 유가족 보상 문제를 다룰 독립 변호사를 지정해 객관적 입장에서 회사 측 잘못과 그에 따른 배상 책임 등을 따졌다. 특히 바라는 “회사가 잘못 행동했을 경우 어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잘못된 관행을 바꿔 나가는 계기로 삼자”며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미국 경영전문 잡지 포천은 “바라 CEO는 ‘다치거나 사망한 사람들을 잊지 않고, 비슷한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진정성을 보여 그에 대한 여론을 우호적으로 바꿨다”며 “이를 통해 미국인의 아이콘인 GM이 자기 파괴적인 악순환에 빠지기 전에 회사를 구해냈다”고 극찬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