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도 과감한 설비투자…3공장 준공…클린룸도 가동
R&D 투자비율 中企평균의 2배…'3층 열수축필름' 특허 획득
올 매출 목표 46% 증가한 700억…직원과 함께 성장하는 기업 꿈꿔
호명화학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이 회사 제품을 써보지 않은 사람도 드물다. TV와 휴대폰 등 전자제품을 살 때 표면보호용으로 씌워진 얇은 필름이나 자동차를 받을 때 씌워진 필름, 생수 팩, 과자봉지, 식품용 랩 등이 이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이다.
일반인은 쉽게 비닐포장재라고 부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성과 특징이 서로 다른 수백종의 필름이다. 폴리에틸렌(PE) 수축필름, 고밀도폴리에틸렌(HDPE)필름, 폴리프로필렌(PP)필름, 전자보호필름, 식품포장필름(랩), 연포장필름 등이다.
포천의 세 개 공장에서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들 필름은 이미 주문을 받은 것들이다. 자동화된 기계설비는 가로 세로가 각각 10m 안팎, 높이는 15m에 이른다. 5층 건물 높이다. 주요 원료에 몇몇 첨가제를 섞어 필름을 만든 뒤 높이 올려보냈다가 식으면 둘둘 만다. 거래처는 약 250곳에 이른다. 국내 굴지의 기업이 대부분 망라돼 있다.
필름은 단순한 제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정호열 사장은 “생수와 음료, 캔맥주 등을 포장하는 열수축필름은 찢어져도 안 되지만 너무 두꺼우면 재료비가 많이 든다”며 “이를 얇으면서도 튼튼하게 만드는 게 바로 기술력”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서로 다른 성질의 원료를 바탕으로 3층 구조의 수축필름을 개발해 발명특허를 받았다. 정 사장은 “기존 제품보다 20%가량 더 얇게 만들 수 있었고 원가절감분을 거래처와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꺼운 끈 한 가닥보다 가는 끈 세 가닥을 꼬면 더 튼튼해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열수축필름은 생수통 음료캔 등을 담은 뒤 열풍을 불어넣으면 오그라드는 성질을 지니고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그래야 내용물이 빠져나오지 않는다.
호명화학은 연구개발을 통해 새로운 기능의 제품을 계속 개발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13년말 3공장을 준공했다. 1, 2공장 근처에 있다. 이 공장을 완공한 뒤 또다시 올해 이탈리아제 첨단 필름자동생산설비 두 대를 들여올 예정이다. 설비와 부대장치를 합칠 경우 올해 투자액은 40억원에 이른다. 118명인 종업원도 20명가량 증원할 예정이다.
이 회사의 작년 매출은 약 480억원(자회사 포함)이다. 정 사장은 “올해 목표는 작년보다 46%가량 증가한 700억원으로 잡고 있다”고 밝혔다. 신설된 3공장 가동이 본궤도에 오르는 데다 첨단 설비 두 대를 증설하는 데 따른 것이다. 이같이 꾸준히 성장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24년간 외길을 걸으며 과감하게 첨단 설비에 투자했다. 정 사장은 고향인 경남 고성에서 맨주먹으로 상경해 동대문에서 필름 유통을 하다가 제조업에 뛰어들어 1991년 호명화학을 창업했다. 그뒤 필름만을 생산했다. 번 돈은 첨단 설비 확충에 사용했다. 포천에 1공장을 세운 뒤 바이어의 주문에 성실하게 응해 사세가 커지자 10년 뒤인 2001년 2공장을 지었다. 정 사장은 “우리는 100% 주문생산을 하는데 바이어가 원하는 물성과 사이즈에 맞춰 공급하다 보니 주문이 꾸준히 늘었다”고 말했다.
2013년에는 3공장을 지었다. 열수축필름은 국내 굴지의 규모를 갖추고 있다. 이들 공장 설비 중 전자제품 포장필름 생산설비 등 핵심 설비는 클린룸에서 가동한다. 종업원은 에어샤워를 해야 들어갈 수 있다. 필름에 미세한 불순물이 붙어 있을 경우 자칫 전자제품 표면에 긁힘 현상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제품에 대한 품질검사도 엄격하게 실시된다. 이 회사는 국제표준의 품질관리시스템을 갖췄고 환경관리시스템도 구축했다.
둘째, 연구개발 중시다. 그는 “좋은 설비만 갖다놓는다고 양질의 필름이 생산되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의 본사 전시실에는 수십종의 필름제품이 전시돼 있고 그 옆에는 원료 수백종이 병에 담겨 있다. HDPE PP 등이다. 정 사장은 “이들 원료만으로 제품이 생산되는 게 아니라 여기에 어떤 재료를 혼합하면 좀 더 좋은 물성이 나올지 연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3층 폴리에틸렌계 열수축필름’과 ‘방충(防蟲)열수축필름’ ‘자외선차단 수축필름’을 개발해 3건의 발명특허를 취득했다. 정 사장은 “지난해 연구개발 투자 비율은 매출의 4.31% 수준”이라고 소개했다. 국내 중소기업의 연구개발 투자 비율의 거의 두 배에 이른다.
셋째, 종업원과 더불어 사는 경영이다. 그는 창업 초기부터 공장 근처에 다세대주택을 지어 종업원이 가족과 입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정 사장은 “종업원용 주택이 20여채”라고 설명했다. 그는 회사 부근에 텃밭도 가꾸고 있다. 이곳에서 상추 오이 고추 토마토 등을 재배해 공장 식당에 공급한다. 그는 “직접 재배한 상추에 돼지고기를 얹어 양념장을 찍어 먹으면 훨씬 맛있고 종업원과 정도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 생산품은 국내 굴지의 기업에 납품되지만 러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 10여개국으로도 수출된다. 정 사장은 “직수출만 400만달러에 이르고 로컬수출까지 합치면 이보다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2세 경영도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 정 사장의 아들인 정기명 과장(31)은 한국외국어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대기업 계열사에서 근무하다가 올해 초 경영수업을 받기 위해 입사했다. 정 사장은 “많은 중견·중소기업이 2세 경영 준비를 소홀히 하다가 가업 승계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은 사례를 종종 봤다”며 “10년 이상 고되게 훈련시켜 경영에 본격 참여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강조하는 2세 경영인의 덕목 1순위는 남에 대한 배려다. 생산 판매 자금 등 업무에 관한 정확한 지식과 국내외 시장동향 분석은 기본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종업원 거래처 등에 대한 배려라고 그는 강조했다.
정 사장은 고향인 고성과 본사가 있는 포천 주민을 위해 장학금을 쾌척하고 종업원을 위한 명사초청 특강과 동호회 활동 지원 등을 시행하고 있다. 그가 텃밭에서 상추 등을 기르는 것도 종업원에 대한 배려에서 나온 것이다. 정 사장은 “과감한 첨단 설비 투자와 연구개발, 종업원과 상생하는 정직한 경영을 통해 호명화학을 필름업계의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키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