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다음 재앙은 질병…즉각적 도움 필요하다"
서울 성북동 주한 네팔 대사관에는 조기가 걸렸다. 지난 25일 네팔을 덮친 사상 최악의 지진으로 숨진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서다. 지진 발생 나흘째인 29일 주한 네팔 대사관에서 카만 싱 라마 네팔 대사(사진)를 만났다. 그는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 차림이었다. 턱밑에는 거뭇하게 수염이 자라 있었다. 낯빛은 어두웠다. 지진 발생 이후 네팔과 한국을 연결하며 구호활동을 지원하느라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못 잤다고 했다.

그는 30분간의 짧은 인터뷰 중 ‘즉각적인(immediate)’이란 단어를 10회 이상 썼다. 라마 대사는 “이번 지진은 규모 7.5로 8.0이었던 1934년 대지진 때보다 낮았지만 지진 발생 시간이 길어 피해가 컸다”며 “사상자가 계속 늘고 있어 즉각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네팔 내무부가 29일 집계한 사망자 수는 5057명, 부상자는 1만915명이다. 사망자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지진 피해에 대한 집계가 안 되고 있어서다. 그는 사망자 수가 2만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라마 대사는 “지진이 첫 번째 재앙이라면 다음 재앙은 질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네팔에서 6~8월은 거의 매일 비가 내리는 우기다. 그는 “비가 내리면 건물 잔해와 흙더미 아래 깔린 사체가 썩기 시작할 것”이라며 “빨리 수습하지 않으면 오염된 물로 전염되는 콜레라 등 질병이 퍼져 2차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긴급한 것으로 식수와 의약품, 식품, 중장비, 담요 등 구호물품과 의료진 등 구호인력을 들었다. 또 장기적으로 국가 재건을 위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네팔의 경제력만으로 사태를 극복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네팔을 재건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 50억달러(약 5조3000억원)가 넘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네팔의 1인당 국민소득은 699달러로 세계 175개국 중 168위다.

그가 “지진 피해가 복구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네팔에 투자해달라”고 부탁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라마 대사는 “무너진 건물과 사회기반시설을 새로 지으려면 각국 정부를 비롯 기업의 투자가 절실하다”며 “세계 2위 수자원 보유 등 성장 잠재력이 있는 만큼 네팔에서 사업 기회를 찾아달라”고 당부했다.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라마 대사는 “하루에도 수십통씩 도움을 주고 싶다는 전화가 온다”며 “한국인들이 보여준 따뜻한 마음에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네팔 대사관은 27일부터 네팔 지진 참사 조문객들을 위한 조문록을 마련했다. 평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주한 네팔 대사관(서울시 성북구 선잠로2길 19)을 방문해 조문록에 글을 남길 수 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