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엊그제 미국 의회에서 행한 연설은 그의 역사 인식 수준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에 불과했다. 미국이 전후 70주년이 되는 시점에서 전전(戰前)의 반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침략에 대한 책임회피와 자화자찬의 언사만 되풀이했다. 아시아 국가들에 일으켰던 침략전쟁에 대해 “아시아 여러 국민에게 고통을 안겨준 사실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았다”고 짤막하게 언급했을 뿐이다. ‘사과’라는 단어는 끝내 없었다. 오히려 한국과 대만 중국 등의 경제 발전을 언급하면서 “당시 이 국가들의 성장을 위해 (일본이) 자본과 기술을 열정적으로 쏟아부었다”고 강변했다.

에드 로이스 미 공화당 하원 외교위원장이 극히 이례적으로 “아베 총리는 동아시아 관계를 괴롭히는 과거사를 적절하게 해명할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성명서까지 발표했을 정도다. 일본에서도 발언 내용이 무엇인지 도대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애초 아베에게 사과를 바라는 것은 무리였을지 모른다. 자기반성을 전혀 하지 못하는 국가가 바로 일본이다. 아직도 군국주의 대본영의 과대망상이 일본 사회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는 증거다. 일본 군국주의 광기는 태평양전쟁 당시 전쟁 사망자의 거의 3분의 2를 굶어죽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군국주의 일본은 그렇게 무모하게 행군했다.

이웃에 대한 사과에 앞서 일본인 스스로 역사적 과오에 대한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먼저 자기 국민들에게 사죄를 해야 구시대가 청산되는 것이다. 아베는 지금 대본영 참모들의 짓거리를 따라하려고 하는 것 같다. 미·일 간 방위협력지침을 18년 만에 개정했다고 자랑하는 것은 자기 나르시시즘에 불과하다. 워싱턴포스트가 아베의 만찬을 우울한 파티(subdued party)라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한국이 우려하는 것은 일본의 자기부정적 망상이다. 아직도 신의 보살핌이요, 신국(神國)의 힘이 존재한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일본에 남은 것은 자폐 증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