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블화 폭락에 가격 떨어져
일부 제품은 중국산보다 싸
유럽·동남아·인도로 수출 확대
포스코 등 국내기업 타격 심각
수년째 중국발 공급 과잉에 시달리고 있는 철강시장에 러시아마저 가세하면서 2009년 이래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은 철강 가격은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포스코 등 국내 철강기업도 타격을 받고 있다. 노민용 포스코 재무실장(상무)은 지난달 21일 1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동남아시아 시장으로 러시아산 저가 철강이 유입되면서 인도네시아 법인이 예상보다 큰 적자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중국산보다 싼 러시아산 철강
러시아는 작년 말 기준 세계 철강 수출시장의 16%를 장악하고 있다. 중국(26%)에 이어 세계 2위다. 중국의 지난해 조강생산량은 9억3780만t, 러시아는 4억6400만t을 기록했다. 철강산업 연구기관 CRU에 따르면 핫코일 등 일부 러시아산 철강은 t당 435달러로 중국산보다 10달러 이상 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중국산 철강은 그동안 업계 평균 가격보다 t당 5달러 낮은 가격에 유통됐다. 영국 철강전문연구기관 MEPS의 제레미 플랫 애널리스트는 “유럽 기업에 지금 가장 매력적인 건 러시아산 철강”이라며 “조만간 가격면에서 중국산을 제칠 가능성도 높다”고 분석했다.
러시아산 철강은 그동안 유럽 지역에서 주로 소비됐다. 운송 비용이 적게 든다는 장점 때문이다. 지난해 러시아 루블화와 우크라이나 흐리브냐화 가치가 반 토막 난 탓에 최근에는 동남아시아와 인도 지역까지 파고들었다. 에브라즈, NLMK 등 러시아 철강회사들은 수출량 기준으로 지난해 아르셀로미탈, 포스코 등 글로벌 상위 업체들을 제쳤다.
◆보호무역주의 거세…한국만 ‘뒷짐’
당분간 철강시장 공급 과잉은 해소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은 올 1분기 조강생산량이 20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였지만 내수 부진으로 수출 물량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저가 철강 유입으로 무역보호주의도 거세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최근 철강 완제품 수입물량에 26%의 관세를 매기기로 했다. 인도 JSW스틸, 진달스틸앤드파워 등 중소 철강업체는 철강 수입관세 인상을 요구했고, 인도 정부는 10% 인상안을 곧 내놓겠다고 밝혔다. 터키와 이란 역시 관세 인상을 추진 중이다.
철강업계가 수요 부진, 공급 과잉, 저가 공세 등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지만 한국은 뒷짐만 지고 있다. 한국은 주요 철강 생산국 중 유일하게 수입재 점유율이 40%를 넘는다. 그러나 2004년 가입한 세계무역기구(WTO)의 철강 무관세 협정에 따라 대부분 수입 철강에 대해 관세를 물리지 않고 있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 업계 1, 2위는 고부가가치강 개발 등으로 차별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중소 철강업체에선 위기감이 크다. 한 철강회사 관계자는 “내수는 점점 줄고 해외에서는 중국 러시아산 제품에 밀리고 있어 이런 상태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