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에서 전시중인 장욱진 화백의 판화 ‘풍경’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에서 전시중인 장욱진 화백의 판화 ‘풍경’
온 식구가 툇마루에 둘러앉아 있다. 하늘에는 새가 두 마리씩 짝지어 날아오른다. 푸른 하늘 양쪽에는 붉은 해와 파란 달이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하듯 둥실 떠 있다. 식구들은 자연을 벗 삼아 삶의 온기를 느낀다. ‘동심의 화가’ 장욱진(1917~1990)의 1979년작 ‘가족’에는 사람, 해와 달, 집 등 생활 주변 이미지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

이왈종의 ‘제주 생활의 중도’
이왈종의 ‘제주 생활의 중도’
장 화백을 비롯 김환기 이왈종 석철주 사석원 윤병락 등 탄탄한 화력(畵力)을 가진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뮤라섹(mulasec) 판화로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오는 15일까지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에서 펼쳐지는 ‘꽃보다 그림-프린트 베이커리’전이다. 빵 가게에서 빵을 고르듯 큰 부담 없이 그림을 살 수 있는 ‘그림 장터’다.

서울옥션과 한국경제신문이 공동 개최하는 이번 전시회에는 작고·중견·신진 작가 30여명의 뮤라섹 판화 30여점이 걸렸다. 뮤라섹 판화는 종이를 재료로 하는 기존 판화와 달리 피그먼트 안료를 사용해 화가의 그림을 압축한 다음 아크릴 액자로 만든 아트 상품. 질감이 섬세하고 색감이 생생히 살아 있는 게 특징이다. 작고한 작가를 제외한 참여 작가들이 직접 고유번호(에디션)를 붙이고 사인도 했다.

미술품 소장 인구의 저변 확대를 위해 작품값을 3호 9만원, 10호 18만원, 20호 38만원, 30호 68만원으로 책정했다. 다만 ‘가족’ ‘집’ ‘풍경’ ‘소와 돼지’ ‘나무’ 등 장욱진의 작품은 크기와 관계없이 점당 55만원이다. 대신 작품을 구입하고 2년이 지난 시점부터 1년 동안 언제든지 구입 가격의 80%까지 환불을 보장해 준다.

출품작은 예쁜 구상화부터 팝아트, 추상화, 풍경화 등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의 스펙트럼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먼저 김환기의 1958년작 ‘항아리와 매화’, 1971년작 추상화 ‘유니버스’가 관람객을 반긴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펼친 김 화백의 파리시대 대표작 ‘항아리와 매화’는 조선백자와 매화에 담긴 미학적 가치를 되살려 냈다. ‘유니버스’는 별들이 소용돌이치는 광활한 우주를 액자에 담아놓은 듯한 작품이다.

유명화가 이왈종 화백은 자연과 사람이 혼연일체가 된 환상적인 공간을 경쾌하고 시원스럽게 묘사한 작품 ‘제주 생활의 중도’ 시리즈를 내놓았다. 자동차, 꽃, 새, 강아지, 닭 등 생활 주변에서 숨 쉬는 동식물이 신나게 뛰노는 ‘희망의 공간’이 흥미롭다. 50대 인기화가 사석원의 작품 ‘꽃을 먹은 양’은 몸 안 가득히 꽃이 만발한 양의 모습을 그렸다.

30년간 생명을 노래해 온 김병종, 고향인 경북 영주에서 탐스럽게 익은 사과를 화폭에 옮긴 윤병락, 동화 같은 여행 이야기를 펼쳐낸 전영근, 바람에 일렁이는 풀밭을 묘사한 안병근, 알록달록한 금빛의 화려한 색채로 코끼리를 그린 권수현 등 작가 특유의 재치와 순수함을 엿볼 수 있는 그림도 출품됐다.

이옥경 서울옥션 대표는 “미술을 좋아하지만 선뜻 작품을 사기 쉽지 않은 일반인이 손쉽게 그림을 골라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프린트 베이커리’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전시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02)360-423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