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시장 K-OTC '후끈'…거래액 1000억 돌파
삼성증권은 2013년 카카오 임직원의 우리사주 25만주를 신탁상품으로 구조화해 프라이빗뱅킹(PB)센터에서 판매했다. 장외에서만 거래되던 카카오 주식을 구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지난해 카카오가 다음과 합병을 통해 코스닥시장에 우회상장한 뒤 당시 PB 고객들은 적지 않은 차익을 챙길 수 있었다.

은밀하게 움직이던 장외주식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출범 9개월째를 맞은 K-OTC(over the counter·장외)시장이 안착하면서 거래기업 수가 크게 증가한 데다 ‘공모 가능주’에 선(先)투자하려는 수요도 많아져서다.

◆장외주 게시판까지 ‘들썩’

금융투자협회가 작년 8월 정규 장외시장인 K-OTC시장을 개설한 뒤 누적 거래량이 지난 8일 기준 1004억원으로 집계됐다. 9개월 만에 거래액 1000억원을 돌파한 것. 하루 11억5000만원꼴이다.

지난달 한국실리콘 등 신규 기업 17곳이 추가 거래되면서 장외시장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현재 K-OTC를 통해 거래할 수 있는 기업은 총 129개(136종목)다. 미래에셋생명 제주항공 등과 같이 기업공개(IPO)를 앞둔 기업에 미리 투자할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다. 금융자산을 수십억원 이상 굴리는 자산가들도 장외주를 알음알음 사모으고 있다는 전언이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100% 증거금이 있어야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사설 브로커를 활용할 때와 달리 허수 매물이 나올 수 없는 구조”라며 “IPO 때 공모주를 확보하려면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지만 장외주를 매입하면 이런 경쟁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개설된 장외주 호가 게시판인 K-OTC BB(bulletin board) 거래종목도 급증세다. 개설 당시 75개였던 종목 수는 지난 8일 180개로 2.4배 이상 증가했다. 이 게시판은 K-OTC의 2부격으로, 통일주권 등 주식 유통에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만 갖추면 매수·매도자가 자유롭게 호가를 올릴 수 있다. 코리아에셋증권 등 7개 증권사를 거쳐 거래할 수 있다.

김정수 금융투자협회 K-OTC 부장은 “앞으로 장외주식뿐만 아니라 창업투자조합 및 사모펀드 지분, 해외 DR(주식예탁증서)까지 제한없이 거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자 신고서 면제 추진

다음달엔 K-OTC에 지정·등록되는 기업이 다수 추가될 예정이다. 쌍용건설 삼보이엔씨 풍림산업 오리엔트전자 등 10여개사다. 첫 거래가격은 주당순자산가치의 30~500%다. 이튿날부터 전날 가중평균가격 대비 ‘±30%’의 가격 제한폭 적용을 받는다. 증권사는 수량 가격 등 거래조건을 협의해 1 대 1 상대매매 방식으로 중개한다. 일반 주식시장과 달리 매수·매도자 간 가격이 맞지 않으면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금융투자협회는 K-OTC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매출(증권변경)신고서 면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투자자들이 K-OTC에서 특정 기업 주식을 매매하면, 해당 기업은 매출 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의무 규정이 아니어서 실효성이 낮은 데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경우 이런 규제가 아예 없다. 김 부장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만큼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바꿀 수 있도록 당국에 건의 중”이라고 말했다.

장외시장 투자자 사이에선 세제에 대한 불만도 크다. 벤처기업 주식이 아니라면 10(중소기업)~20%(대기업)의 양도소득세를 물어야 해서다. 반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상장기업의 매매차익에 대해선 비과세(소액투자자 기준)가 적용되고 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