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늘 꿈꾸던 곳이 바로 여기였다
여고시절에 좋아했던 헤르만 헤세와 내가 늘 꿈꾸는 정원. 이 두 단어만으로도 나는 기뻤다. 정원을 가꾸는 것은 오래된 꿈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휘바라는 카페와 시카라는 식당이 눈에 들어 왔다. 휘바는 이탈리아 음식과 차를 파는 곳이고, 시카는 바베큐를 겸한 한정식 집이었다.
식사를 하기 조금 이른 시간이라 우리는 송추계곡을 걷기로 했다. 옛날의 어수선하고 지저분하던 계곡은 간 데 없고, 계곡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정돈된 산책로는 군더더기 없이 자연 상태 그대로여서 걷기에 편안했다. 산벚나무와 진달래가 활짝 피었고, 중간 중간 황매화와 애기똥풀이 노란 봉오리를 터트리고 있었다. 재잘대는 새소리와 졸졸 흐르는 계곡 물소리에 날씨까지 너무나 좋았다. 기분 좋은 땀이 났다.
파스타를 좋아하는 나는 카페 휘바로 들어갔다. 가벼운 산책이었지만 출출해서 치즈를 얹은 가지샐러드, 로제해산물파스타, 먹물크림 리조또와 고르곤졸라 피자를 시켰다. 이곳의 특징은 설탕과 소금을 사용하지 않고, 해산물의 짠맛으로 간을 맞추는 것이다. 천연 재료의 특징을 잘 살려 요리를 해서인지 깔끔하고 담백했다. 먹물크림 리조또는 색깔 때문에 조금 꺼려졌지만 고소하고 맛있었다.
1층에서 식사를 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1층과는 다른 편안하고 안락한 분위기였다. 햇볕이 따듯하게 내리 쬐였고 선들 바람이 불었다. 배도 부르고 나른해진 우리는 적당한 의자에 앉았다. 아이스커피와 상큼한 레몬주스, 와플을 먹으며 곧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2층은 벽이 없는 옥상으로 크게 떠들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혼자 앉아 그네 모양의 자리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연인끼리 편안히 누워 차를 마셔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우리는 그곳에 한참 앉아 있었다. 나이가 좀 든 신사 두 분이 올라오더니 우리에게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괜찮다고 했다. 그랬더니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잠깐만 일어나 보라고 했다. 잠깐 일어나서 앉아보고 싶었던 다른 자리에 앉아 보았다. 그 사이에 의자를 정돈해 주더니 원래 이렇게 앉아야 더 편안하다고 했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신사 중 한 분은 이곳 관계자인 듯했다. 잠시 후 우리에게 헤세의 정원을 안내해 주겠다고 해서 우리는 따라 나섰다.
처음 휘바의 건물은 노출 콘크리트 구조로 그저 평범했다. 안내를 받으며 지하로 내려가니 갤러리를 겸한 단체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듯한 친환경적인 건물은 어느 곳을 보아도 한 폭의 그림이었다.
나무데크와 돌길을 따라 언덕으로 오르니 풍선 같은 하얀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양머리 모양의 이 물체는 버블호텔이란다. 하얀색 버블호텔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앙증맞은 겉모습과 같이 아기자기했다. 내부는 원색의 소파로 포인트를 주고, 침상은 올 화이트의 에어 베드로 되어 있어 구름 속의 취침을 연상시켰다. 부대시설로 정통 핀란드식 사우나도 있었다. 이용하지는 못했지만 그 속의 향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몇 걸음 더 위로 올라가니 돌담을 두른 연못이 나왔다. 송추 계곡의 물을 끌어온 야외 수영장이라고 했다. 자연 상태 그대로여서 친근했다.
헤세의 정원을 거니는 동안 나는 줄곧 꿈속에서 허우적대는 기분이었다. 늘 머릿속으로만 꿈꾸던 것을 이렇게 현실로 만나다니! 그늘과 단 과실을 주는 다양한 나무, 타샤의 정원처럼 온갖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정원을 가꾸고 싶었다. 정원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지인들과 함께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헤세의 정원에는 이 모든 것이 거의 다 갖춰져 있었다.
기회가 되면 버블호텔에서 하룻밤을 머무르고 싶다. 낮에는 야외 수영장에서 자연을 느끼고, 밤에는 소파에서 별을 헤아려 보는 상상만으로도 벌써 행복해진다.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한다면 더욱 특별한 추억이 될 것 같다.
홍예리 HK여행작가아카데미 2기 athenadec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