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국회 법사위원장 '월권 논란'
각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의결을 거친 57개 민생법안 중 세 개만 통과시킨 국회의 ‘초라한 성적표’를 놓고 여야가 13일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여당은 본회의를 앞두고 주요 민생법안 전자서명을 끝내 거부한 이상민 법사위원장의 월권 행위를 집중 성토했다. 법사위원장 한 명의 ‘몽니’로 수많은 민생법안이 볼모로 잡혔다는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김명연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법사위원장이 여야 합의라는 자기체면에 갇혀 법사위원장의 고유 권한을 저버렸다”고 맹비난했다.

이 위원장도 이날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세 개 법안만 (처리)해달라는 요청을 (먼저)해 놓고, 막상 세 개밖에 통과가 안된 이유가 법사위원장에게 있다고 한다”며 “여당 원내대표답지 않은 저급한 행태”라고 반격했다.

모든 법안의 최종 관문 역할을 하는 법사위원장 권한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정치인 개개인의 소신보다 당론을 우선하는 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이 위원장만 비난할 게 아니라 법사위를 법안 처리 지연의 도구로 악용하는 정쟁구조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법사위는 국회법상 상임위가 처리한 법률안에 대해 체계와 자구심사를 하도록 돼 있다. 상임위에서 통과된 법안을 심사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단원제인 한국 국회에는 법사위라는 상원이 있다”는 핀잔까지 나온다. 2013년 12월 당시 박영선 법사위원장도 “외국인투자촉진법만큼은 내 손으로 상정할 수 없다”며 여야가 합의한 법안 처리를 뭉갠 적이 있다.

여당도 법사위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유 원내대표는 지난달 30일 의원총회에서 “(야당에서 원하는) 최저임금법, 고용보험법은 (여당이 주장하는 관광진흥법을 합의해 줄 때까지) 법사위에서 확실히 계류시켜달라”며 법사위를 야당과의 협상 카드로 적극 활용했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국회의 법안처리 속도가 지지부진할 때마다 법사위 탓으로 돌린다”며 “법사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제도를 악용하는 우리 정치와 정치인 수준이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박종필 정치부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