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커피믹스
미국 LPGA 프로들이 한국 선수들에게 ‘다음 대회 때는 꼭!’ 하면서 사다달라고 부탁하는 물품이 2개 있다고 한다. 하나는 태양 아래서 경기해야 하는 여자선수들답게 비비크림이다.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커피믹스다. 적절한 흥분상태가 필요해 커피를 챙겨 마시는 프로선수들에게 언제든 갖고 다니며 순식간에 뚝딱 타먹을 수 있는 믹스가 이미 ‘머스트 해브(must have)’ 아이템이 된 것이다.

커피믹스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커피 상품을 만들어낸 한국의 혁신 사례다. 1976년 동서식품이 커피, 크림, 설탕을 적절하게 섞어 일회용으로 출시한 것이 최초다. 처음에는 직사각형이었다가 1987년께 스틱형으로 바뀌었고 1996년에는 설탕도 조절할 수 있게 개선했다. 2008년엔 쉽게 뜯을 수 있도록 디자인을 바꿨고 최근에는 원두커피만 넣은 상품도 나와 새로운 인기를 끌고 있다. 제조공정에서 절대 습기가 안 들어가게 해 가루가 굳지 않도록 하는 기술은 국내 업체들이 세계 최고다.

커피믹스가 국민적 유행을 타게 된 것은 외환위기 때와 구조조정 바람이 불었던 1990년대 말이다. 당시 ‘커피 타 줄 여직원’이 사라지는 바람에 일정한 커피맛을 보장하는 믹스가 직장을 중심으로 퍼져갔다. 그 사이 커피체인점이 많아지면서 원두커피를 선호하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커피믹스의 인기는 여전하다. 지난해 국내 커피믹스 시장은 1조5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성인들이 커피를 1주에 12.2잔, 1년에 약 630잔 마시는데 이 가운데 40%가 믹스커피다. 믹스커피는 3일에 두 잔 정도를 마시는 셈이다.

수출에서도 효자상품이다. 일본, 중국, 러시아, 베트남, 동남아 등지에 수출되는데 특히 중국은 ‘달달한’ 한국식 커피믹스를 선호해 성장전망이 아주 밝다.

우리 커피믹스가 세계 커피의 주생산지인 남미로 수출된다는 소식이다. 중소기업인 한국맥널티가 칠레에 60만잔 분량의 커피믹스를 1차 공급하며 수출을 본격화하게 됐다. “남미 국가들과의 직접 거래로 원료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중장기적으로 프랜차이즈를 포함한 한국의 푸드테크를 수출할 수 있게 됐다는 게 큰 의미”(이은정 한국맥널티 대표)라니 더욱 기대가 크다.

커피농장에서 땀을 흘린 남미 농부들이 우리 커피믹스를 마시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물론 그보단 남미의 비즈니스맨들이 더 많이 찾을 것이다. 서울의 국제회의에 참가한 외국인들이 인천공항에 나갈 때도 한 박스씩 사간다니 커피믹스의 세계 제패도 머지않았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