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출신 배우 주지훈(34·사진)은 사극에서 정반대 캐릭터를 넘나들고 있다. 드라마 ‘궁’과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에서 왕을 연기한 그가 오는 21일 개봉하는 ‘간신’에서는 조선시대 최악의 간신 역을 해냈다. 폭군 연산군(김강우 분) 때 채홍사에 임명돼 1만여명의 여자를 왕에게 바친 실존 인물 임숭재 역이다.

극중 임숭재는 연산군을 갖고 놀기 위해 미색이 뛰어난 단희(임지연 분)를 간택해 직접 수련한다. 임숭재에게 권력을 빼앗길까 두려운 요부 장녹수는 조선 최고의 명기(名妓) 설중매로 단희를 견제한다. 총 제작비 80억원을 들인 이 영화는 흥행작 ‘내 아내의 모든 것’의 민규동 감독이 연출했다. 14일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주지훈을 만났다.

“작품을 선택할 때 깐깐한 편인데, 민규동 감독한테서는 문자 한 통을 받고 바로 수락했어요. ‘너, 나랑 다음 영화 같이 할래?’ ‘네, 그래요.’ 그게 다였어요. 한 달 뒤 시나리오가 왔고, 석 달 뒤 촬영에 들어갔죠. 민 감독과는 ‘서양골 동양 과자점 앤티크’(2008년) 등을 함께한 뒤 오랫동안 신뢰가 쌓였어요. 감독의 딸들이 성장하는 것도 지켜보며 거의 가족같이 느끼고 있어요.”

그는 채홍사 역을 하면서 조선시대 인권 실태를 새삼 절감했다. 왕은 거의 신적인 존재였다. 그 앞에 바쳐지는 천민 여성들은 짐승과 마찬가지였다.

“살색이 자주 나오지만 별로 외설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을 겁니다. 연산군의 예술적인 욕망과 광기를 포착하는 데 집중하니까요. 연산군은 끊이지 않는 곡선을 가진 여체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듯싶어요. 극중에선 자신만의 색깔을 찾기 위해 여자들에게 기괴하면서도 다양한 포즈를 명한 뒤 그림을 그리죠.”

그는 이 영화가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 중 가장 많은 관객(350만명)을 모은 ‘스캔들’의 기록을 깨기를 바란다고 했다. “정치적인 사극이지만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캐릭터와 사건이 명확하고 감정선도 뚜렷하니까요. 1만원만 내면 두 시간을 즐길 수 있을 거예요.”

30대 중반에 접어든 연기자로서 그의 바람은 무엇일까.

“‘좋은 친구들’이나 ‘간신’ 등에선 성인 역을 맡았지만 고교생이나 대학생 배역도 여전히 들어옵니다.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외모 때문이죠. 그게 강점이자 약점입니다. 좋게 말하면 멀티 배역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지만 개인적으로는 제 나이대에 맞는 배역으로 특화하고 싶습니다.”

곱상한 외모와 달리 그의 성장기는 혹독했다. 외환위기로 가정이 풍비박산 나 학교를 그만둘 뻔했다. 다양한 사회 경험도 했다. 그것이 연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가난하게 성장하는 것은 많이 참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배우로서 어떤 부분에서 내려놓을 수 있게 됐어요. 일상적인 상황의 연기에서 사람들과 공감하는 부분도 커지고요. 부유하게 자라면 경험 폭이 좁아요. 삶의 다채로운 모습을 모르니까 연기하는 데 애로도 크지 않을까요?”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