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서울여대 vs 연세대 '청소아줌마 파업'에 대처하는 자세
[ 김봉구 기자 ] 서울여대 총학생회가 축제 기간 미관을 해친다며 청소노동자들이 학내에 설치한 현수막을 철거해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여대 총학생회는 공지글을 통해 “청소 용역업체에게 서랑제(축제)를 위해 현수막 철거를 요청했고 축제 전날까지 철거되지 않아 직접 철거했다”며 “보다 나은 축제 환경 조성을 위해 철거를 결정하게 됐다. 학생들이 더 즐길 수 있는 서랑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21일 서울여대와 청소노동자들이 소속된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등에 따르면, 이 대학 총학생회는 전날 새벽 청소노동자들이 캠퍼스에 건 현수막과 천 조각을 철거해 쓰레기봉투에 담아 학내 본관 앞에 쌓아뒀다. 청소노동자 노조는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 중이다.

이에 대해 청소노동자들은 “1년에 한 번뿐인 축제를 예쁘게 치르고 싶다는 학생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전날 학교 측에 학생들의 축제 행사는 방해하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 마음 아프다”고 전했다.

최근 연세대 국제(송도)캠퍼스 청소노동자들이 자신들에게 지지를 보내준 학생들에 대한 감사 대자보를 붙여 화제가 된 것과 대비된다.

지난해 말 집단 해고됐다가 약 5개월 만에 복직한 23명의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로 시작한 이 자보에서 “막막한 우리 청소·경비노동자들에게 학생들의 연대와 지지는 어두운 동굴 속 등불과 같았고 사막의 오아시스였다”고 적었다. 이어 “공부만 하고 주위를 챙길 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명문은 학생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도 했다.
서울여대 총학생회의 SNS 공지글(왼쪽)과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이 쓴 대자보. /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서울여대 총학생회의 SNS 공지글(왼쪽)과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이 쓴 대자보. /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여기서 소위 ‘학교 수준 차가 난다’는 류의 비판은 온당치 않다. 학생들에게는 권리가 있다.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수업권이 침해당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연세대 학생들을 칭찬하면 될 일이지, 서울여대 학생들에게 비난을 퍼부을 일은 아니다.

다만 대학 청소아줌마들이 귀족노조와는 거리가 먼 ‘저연봉 비정규직’의 사회적 약자란 점, 용역계약 원청과 하청의 구조적 문제로 고통받는 점을 감안하면 대처가 아쉬운 부분은 있다. 취업난과 비정규직 문제는 머지않은 미래에 대학생들도 맞닥뜨릴 것이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사실 대학의 청소노동자 고용과 처우를 둘러싼 마찰은 수년째 되풀이되는 해묵은 문제다.

원청인 학교가 하청 업체와 용역계약을 맺는다. 최저가 입찰을 따낸 업체는 비용 절감을 위해 청소노동자를 해고하거나 임금을 깎는다. 불이익을 당한 청소노동자들은 원청인 대학이 나서 해결해 달라고 요구한다. 반면 학교 측은 직접 당사자인 용역업체와 얘기하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대부분 대학에서의 학교 본부와 청소노동자들 간 대립은 이 과정의 반복이다.

대학의 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등록금 동결로 재정 압박을 받고 있으며 대학 구조조정으로 인한 정원 감축 등 외부 환경도 엄혹하다.

용역계약을 맺은 학교가 청소노동자들을 직접 상대할 의무 역시 없다. 그간 이 사안을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학교엔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맞다. 용역업체와의 계약이지, 학교와의 직접계약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법이 아니라 해서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이해당사자가 편법에 가깝다고 느낀다면 갈등의 불씨가 남는다.

그래서 학교는 좀 더 ‘세련된 경영 감각’을, 학생들은 보다 ‘사회적 감수성’을 길렀으면 싶다.

대학은 해고나 임금 삭감으로 절감하는 비용과 처우 개선, 고용 안정 등 조치를 통해 얻는 이미지 개선 효과를 잘 저울질해볼 필요가 있다. ‘철밥통’이라 불리는 대학 교직원은 제쳐두고 계약직 청소노동자들부터 손대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학생들도 마찬가지. 축제도 좋고 권리 주장도 필요하다. 그런데 대학 축제가 생겨난 배경 중엔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도 있다. 대학 축제가 ‘대동제(大同祭)’로 명명된 이유다. 나의 권리가 중요한 만큼 같은 공간을 사는 구성원의 권리에 대한 공감과 배려도 중요하다. 그게 바로 최근 대학들이 강조하는 인성교육 아닐까.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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