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권·이념 갈등 뒤엉켜…새정치연합 '12년 계파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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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새정치 계파갈등'
12년간 6번 바뀐 '당 간판'
대북송금 특검으로 갈등 시작…실용이냐 개혁이냐 '노선투쟁'
지역갈등에 공천권 싸움까지
당대표가 공천에 막강파워…선거때만 되면 대립 격화
12년간 6번 바뀐 '당 간판'
대북송금 특검으로 갈등 시작…실용이냐 개혁이냐 '노선투쟁'
지역갈등에 공천권 싸움까지
당대표가 공천에 막강파워…선거때만 되면 대립 격화
지난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진행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6주기 추도식에서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에게 욕설과 야유, 물세례가 쏟아졌다. 친노무현계 참석자들로부터다. 친노-비노 진영 간 갈등의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새정치연합의 중진 의원은 “새누리당 의원들보다 같은 당 다른 계파끼리 말이 더 안 통한다”고 할 정도로 계파 갈등의 골은 깊다.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당시 ‘100년 정당’을 표방했으나 12년간 당 이름이 여섯 번이나 바뀌었고, 당 대표는 29번이나 교체됐다. 번번이 친노-비노 간 갈등 때문이었다. ○선거 때마다 쪼개지고 합치고…
새정치연합의 계파 갈등은 2003년 노 전 대통령이 주도한 열린우리당 창당과 함께 본격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송금 특검으로 촉발된 당내 김대중-노무현 세력 간 갈등에다 실용파와 개혁파 간 노선 투쟁까지 겹쳤다. 노무현 정부 말기 대통령 ‘레임덕(집권 말기 지도력 공백)’으로 김 전 대표와 정동영 상임고문, 천정배 무소속 의원 등은 당을 떠났다.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는 남으면서 이들 두 세력 간 충돌은 계속됐다.
2007년 대선 때 야권 후보 경선에서 고배를 마신 손학규 상임고문은 자신의 세력을 키워 또 다른 계파를 만들었다. 그는 당 대표를 맡고 있던 2011년 민주통합당을 탄생시켰다.
2012년 한 전 총리가 당 대표로 선출된 뒤 4월 치러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친노계 인사들이 대거 공천을 받으면서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한 전 총리는 물러났다. 그해 6월 당 대표 경선에서 이 전 총리가 김 전 대표를 물리쳤지만 대선에서 패배한 친노계는 2013년 김 전 대표에게 당권을 내줬다. 문재인 대표가 올해 2월 당 대표가 된 뒤 4·29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하며 친노-비노는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다.
○근본 원인은 당내 권한 집중
새정치연합은 이런 과정을 거쳐 친노계와 옛 민주계, 김근태(민평련)계, 정세균계, 김한길계, 안철수계, 정동영계 등으로 분화됐다. 지역과 이념 갈등까지 중첩되면서 태생적 한계에 따른 갈등은 근본적으로 치유가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새정치연합의 한 중진 의원은 “계파 청산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비민주적인 당의 구조 탓”이라며 “당을 통합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과 구심점이 없는 지금의 상태라면 사람이 아무리 바뀌어도 계파는 다시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 앞뒤로 계파 갈등이 격화되는 것은 결국 당 대표가 가지고 있는 공천권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도 “당권을 포함한 정치적 자원이 한쪽으로 독점되기 때문”이라며 “어느 한쪽이 모든 권력을 갖고 있으니 ‘보험’ 차원에서 특정 계파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내에선 지난해 7월과 올해 4월 두 번 연속 재·보선 참패를 당하고도 내부 분열을 봉합하지 않는다면 내년 총선에서도 패배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비노 의원들이 주장하는 친노의 폐해는 2012년 4월 총선 때 친노 위주의 공천, 대선 선거운동 과정과 당 운영에서 비노 의원들 소외 등을 꼽는다. 친노 대 비노의 갈등구도를 깨기 위해서는 친노세력이 철저히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느냐에 달렸다는 게 당의 중론이다.
진명구 기자 pmgj@hankyung.com
새정치연합의 중진 의원은 “새누리당 의원들보다 같은 당 다른 계파끼리 말이 더 안 통한다”고 할 정도로 계파 갈등의 골은 깊다.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당시 ‘100년 정당’을 표방했으나 12년간 당 이름이 여섯 번이나 바뀌었고, 당 대표는 29번이나 교체됐다. 번번이 친노-비노 간 갈등 때문이었다. ○선거 때마다 쪼개지고 합치고…
새정치연합의 계파 갈등은 2003년 노 전 대통령이 주도한 열린우리당 창당과 함께 본격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송금 특검으로 촉발된 당내 김대중-노무현 세력 간 갈등에다 실용파와 개혁파 간 노선 투쟁까지 겹쳤다. 노무현 정부 말기 대통령 ‘레임덕(집권 말기 지도력 공백)’으로 김 전 대표와 정동영 상임고문, 천정배 무소속 의원 등은 당을 떠났다.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는 남으면서 이들 두 세력 간 충돌은 계속됐다.
2007년 대선 때 야권 후보 경선에서 고배를 마신 손학규 상임고문은 자신의 세력을 키워 또 다른 계파를 만들었다. 그는 당 대표를 맡고 있던 2011년 민주통합당을 탄생시켰다.
2012년 한 전 총리가 당 대표로 선출된 뒤 4월 치러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친노계 인사들이 대거 공천을 받으면서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한 전 총리는 물러났다. 그해 6월 당 대표 경선에서 이 전 총리가 김 전 대표를 물리쳤지만 대선에서 패배한 친노계는 2013년 김 전 대표에게 당권을 내줬다. 문재인 대표가 올해 2월 당 대표가 된 뒤 4·29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하며 친노-비노는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다.
○근본 원인은 당내 권한 집중
새정치연합은 이런 과정을 거쳐 친노계와 옛 민주계, 김근태(민평련)계, 정세균계, 김한길계, 안철수계, 정동영계 등으로 분화됐다. 지역과 이념 갈등까지 중첩되면서 태생적 한계에 따른 갈등은 근본적으로 치유가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새정치연합의 한 중진 의원은 “계파 청산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비민주적인 당의 구조 탓”이라며 “당을 통합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과 구심점이 없는 지금의 상태라면 사람이 아무리 바뀌어도 계파는 다시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 앞뒤로 계파 갈등이 격화되는 것은 결국 당 대표가 가지고 있는 공천권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도 “당권을 포함한 정치적 자원이 한쪽으로 독점되기 때문”이라며 “어느 한쪽이 모든 권력을 갖고 있으니 ‘보험’ 차원에서 특정 계파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내에선 지난해 7월과 올해 4월 두 번 연속 재·보선 참패를 당하고도 내부 분열을 봉합하지 않는다면 내년 총선에서도 패배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비노 의원들이 주장하는 친노의 폐해는 2012년 4월 총선 때 친노 위주의 공천, 대선 선거운동 과정과 당 운영에서 비노 의원들 소외 등을 꼽는다. 친노 대 비노의 갈등구도를 깨기 위해서는 친노세력이 철저히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느냐에 달렸다는 게 당의 중론이다.
진명구 기자 pmg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