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자로 살다 대리점 사업 실패
'컴맹 탈출' 복지관에서 인생 반전
'미친듯이 한다' 프로정신 공통점
하지만 ‘실버 모델계의 차승원’이라 불릴 정도로 관련 업계에서 유명한 곽씨의 원래 직업은 연예계와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무대 경험이라곤 12세 때 학교 학예회에 나간 게 전부였다. 한양대 화학공학과 60학번인 그는 졸업 후 한일시멘트에 입사한 뒤 현대시멘트 생산부장, 현대종합금속 공장장, 광덕기계공업 부사장 등을 지내며 기술자로 살아왔다. 직장을 그만둔 뒤엔 철강 대리점 사업을 했다. 그러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전 재산을 잃고 낙향했다가 4년 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다시 서울로 올라오면서 ‘반전’은 시작됐다. ‘컴맹’이라도 탈출하자는 마음에 집 근처 서초노인복지관을 찾아갔다가 우연히 게시판에 붙어 있는 ‘실버모델 교육 프로그램’ 안내문을 봤다. 곽씨는 “강사가 날 보자마자 ‘모델 하기 딱 좋은 체격 조건’이라 했다”며 “그때부터 걸음걸이며 발성, 표정 연기를 하나하나 배워나갔다”고 말했다. 또 “뭐 하나를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 모델 교육 프로그램도 최선을 다해 임하다 보니 전혀 몰랐던 내 안의 ‘끼’를 발견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광고 모델로 본격 발탁된 데는 ‘뭐든 미친 듯이 해야 한다’는 그의 프로정신이 한몫했다. 당시 TV 방송국에선 인터뷰 촬영을 위해 노인복지관을 많이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곽씨가 프로근성을 십분 발휘해 카메라 앞에서 떨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방송작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후 외환위기 당시 해고되거나 실직한 이들의 자립 생활기를 담은 MBC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광고 출연 요청이 이어지면서 ‘화려한 외출’이 시작됐다.
그러나 사람들이 조금씩 알아보게 될 때까지도 곽씨는 모델 일을 가족에게는 ‘일급비밀’로 부쳤다. 그는 “우리 때만 해도 연예인에 대한 편견이 있다 보니 아내가 처음엔 걱정했다”며 “지금은 아내와 함께 방송에 나올 때면 자기 출연료를 달라고 할 정도로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프로 모델로서 일상생활에서도 연기 훈련과 건강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세수를 하거나 심지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도 상황을 설정해 표정 연기를 연습한다. 덤벨과 평행봉, 스포츠댄스 같은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YMCA에서 열린 60대 이상 수영대회에서 금메달을 딸 정도로 수영은 거의 전문가급이다.
곽씨는 노인들에게 “작은 일이라도 직접 찾아서 하라”고 조언한다. 모델 일을 하면서 얼굴이 알려질 대로 알려진 곽씨는 지하철 꽃 배달 아르바이트를 겸하고 있다. “지하철로 이동하며 꾸준히 걸으니 건강 관리도 되고, 꽃을 받은 사람의 웃는 얼굴을 보며 덩달아 기분도 좋아지고, 자기 홍보를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사조’”라고 그는 설명했다.
박진영 한경매거진 기자 bluep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