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씨(87)는 시가 10억원대의 아파트를 아들(62)에게 증여하고 싶지만 아들이 암 투병 중이어서 고민이다. 김씨는 은행과 상담 끝에 아들이 아닌 30대 초반의 손자에게 바로 증여하기로 했다. 이른바 ‘세대생략 증여’다.

최근 들어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바로 재산을 물려주는 세대생략 증여가 늘고 있다. 세대생략 증여는 이른바 ‘노노(老老) 증여’에 따른 전체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노노 증여는 80~90대의 부모가 60~70대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하는 것으로, 대표적인 고령사회인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노 증여는 그러나 짧은 기간에 할아버지에서 아버지, 손자를 차례로 거치는 3대 간 증여를 해야 할 가능성도 있어 세금 측면에서 부담이 크다.

반면 60~70대 자녀세대를 건너뛰고 손자세대에 바로 물려주는 세대생략 증여를 하면 할증세율 30%가 부과되지만, 두 번 낼 세금을 한 번만 내기 때문에 그만큼 세금을 아낄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증여자산의 가치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세대생략 증여는 미리 재산을 옮겨 놓는 것이 유리하다는 증여세 절세의 원칙에도 충실하다.

5억원짜리 부동산을 증여한다고 가정해보자. 아들에게 증여할 경우 공제금액(5000만원)을 제외한 과세표준은 4억5000만원이다. 여기에 증여세율(1억원 이하 10%+1억원 초과 금액의 20%)을 적용하면 세금은 8000만원이 나온다. 손자에게 넘어갈 때 다시 8000만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두 번의 취득세(4000만원)까지 더하면 세금은 총 2억원이다.

대를 건너 손자에게 증여하면 자식에게 증여할 때보다 30%의 세율이 할증된다. 그러나 할증을 더해도 증여세는 1억400만원에 그친다. 한 번의 취득세(2000만원)까지 더한 총 세금은 1억2400만원이 된다. 7600만원의 세금이 절약된 것이다. 자식이 부동산을 갖고 있는 기간에 가격이 올라가면 그만큼 세금을 더 내야 하는 부담도 사라진다.

정진형 국민은행 세무전문위원은 “국세청 통계 등에 따르면 최근 5년새 재산을 물려받은 10대 청소년의 증가율이 40대에 비해 두 배나 된다”며 “부모는 물론 조부모 세대로부터 자산을 증여받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한신/김일규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