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 수상 천재 수학자 존 내시 교통사고로 별세…'죄수의 딜레마' 설명한 게임이론의 선구자
정신분열증을 앓는 천재 수학자의 인생을 그린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제 모델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존 내시가 교통사고로 타계했다. 향년 86세.

내시는 지난 23일 미국 뉴저지 고속도로에서 택시를 타고 가던 중 택시운전사가 앞 차를 추월하려다가 가드레일을 들이받으면서 택시 밖으로 튕겨 나가 현장에서 바로 숨졌다. 부인 알리시아 내시(82)도 함께 별세했다. 경찰은 그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고 밝혔다.

1995년부터 모교인 프린스턴대에서 명예수학자로 재직한 그는 지난 19일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벨상을 받기 위해 노르웨이로 출국했다가 사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뉴어크 공항에 도착,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내시는 22세였던 1950년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 ‘비협조적 게임’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내시균형이론’을 내놓으면서 주목받았다. 게임이론의 틀이 된 이 논문은 “서로 비협조적인 게임 참여자는 상대방의 전략에 따라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하게 되며, 상대의 전략이 바뀌지 않는 한 자신의 선택 역시 바꾸지 않는 균형상태에 도달하게 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논문은 이런 균형상태가 참여자 모두에게 최대의 이익을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입증하며 ‘죄수의 딜레마’를 설명하는 대표 이론으로 자리잡았다.

갈등과 협조의 상관관계를 수학적으로 분석한 내시균형이론은 이후 국제무역과 정치 협상의 기본모델이 됐고, 그는 1958년 31세에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종신교수로 임명됐다. 하지만 이때부터 끊임없이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는 피해망상과 정신분열증에 빠지면서 그의 천재성도 묻혀버렸다.

부인 알리시아는 그를 헌신적으로 보살피면서 정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왔고, 노벨상 위원회는 논문을 발표한 지 44년이 지난 1994년 존 하새니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캠퍼스 교수, 라인하르트 젤텐 독일 본대 교수와 함께 그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그의 천재성은 1948년 카네기멜론대(당시 카네기 공과대학)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학원에 지원했을 당시 지도교수였던 리처드 더핀 박사가 “이 사람은 천재다(This man is a genius)”라는 단 한 문장의 추천서를 써 준 일화로도 유명하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27쪽에 불과했다.

내시의 일대기는 2001년 할리우드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통해 일반인에게 알려졌다. 이 영화는 세계에서 3억명이 넘는 관람객을 모으며 아카데미 최우수 영화상을 비롯한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주인공 역할을 맡은 러셀 크로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망연자실한 심정이다. 존과 알리시아, 유족들에게 애도를 표한다”며 “아름다운 이성, 아름다운 열정”이라는 글로 내시에게 경의를 표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그의 부고 기사에 “위대한 성공을 넘어 위대한 투쟁의 삶을 살았다”는 제목을 달았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