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새누리통신' vs '새정치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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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요즘 한국 통신시장이 점입가경이다. 최근 정부와 새누리당이 당정 협의를 통해 특정 통신사업자의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발표한 것은 한 편의 코미디였다. 정부가 요금인가제를 쥐고 있다고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부는 한술 더 떠 데이터 중심 요금제가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덕분인 양 공치사를 늘어놓기 바빴다. 아무리 다급하기로서니 어떻게 단통법 때문에 데이터 중심 요금제가 나왔다고 우길 수 있는지. 이미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채택한 해외 통신사업자들이 웃을 일이다.
‘혁신’보다 ‘규제’ 게임
정치권은 더 가관이다. 여야는 데이터 중심 요금제가 서로 자기네 공이라며 원조 논쟁까지 벌이는 마당이다. 급기야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더 낮은 요금 약속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벌써부터 다가오는 총선에서 양당이 통신비를 또 얼마나 인하하겠다고 공약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민간 통신사업자는 온데간데없이 통신시장이 마치 ‘새누리통신’과 ‘새정치통신’으로 재편된 양상이다. 통신요금을 국민투표로 결정하자는 식이다.
통신사업자들은 이런 정치권의 압박이 시장경쟁의 심각한 왜곡이라고 반발한다. ‘무조건 요금만 낮추라면 투자는 하지 말라는 거냐’는 항변도 들린다. 하지만 통신사업자들 스스로 정치권의 간섭을 불러들인 자업자득의 측면도 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이 이른바 유효경쟁이라는 통신정책 틀 속에서 ‘생존’과 ‘성장’을 담보받은 것부터가 그렇다. 보조금 규제가 엎치락뒤치락했던 배경에도 이들의 이해관계가 작용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단통법도 마찬가지다.
규제를 놓고 유불리에 따라 통신사업자들이 혈투를 벌이는 일도 다반사다. 특히 시장지배자 규제를 놓고 줄기차게 싸우는 게 단적인 사례다. 그럴 때는 학계, 연구계, 시민단체까지 패거리가 돼 짝 갈라진다. 최근 결합상품 규제를 놓고 학계에서 정반대 주장이 나오고 정부가 규제를 검토한다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보면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정부나 정치권을 상대로 한 은밀한 로비는 말할 필요도 없다. 통신사업자들 역시 ‘경쟁’과 ‘혁신’보다 ‘규제’ 게임에 길들여져 왔던 것이다. 이러니 소비자로부터 불신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
통신사업자들의 규제 게임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부나 정치권에 그만큼의 끼어들 여지를 새로이 만들어낸다. 요금인가제가 폐지돼도 또 다른 규제가 은근슬쩍 들어설 게 뻔하다. 한마디로 규제의 악순환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쟁도 혁신도 질식당하기 마련이다.
제4통신, 묘수 될까
그렇다면 제4통신 카드는 먹힐까. 기존 통신사업자들은 일제히 반대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제4통신에 시장을 뒤흔드는 일종의 ‘매버릭(maverick·독자 노선파)’ 역할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프랑스는 성공했다. 그러나 지금 같은 규제환경이라면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제4통신이 창의적 발상, 경쟁과 혁신으로 변화를 불어넣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선발자에 대한 규제, 후발자에 대한 온갖 특혜와 보호를 요구하며(이른바 ‘비대칭규제’ 등) 규제 게임의 참여자만 하나 더 늘어나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규제의 악순환은 이렇게 산업 자체를 망친다. 이 나라 정치권과 정부는 통신산업이 다 망가지고 나서야 이를 깨닫게 될 것 같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혁신’보다 ‘규제’ 게임
정치권은 더 가관이다. 여야는 데이터 중심 요금제가 서로 자기네 공이라며 원조 논쟁까지 벌이는 마당이다. 급기야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더 낮은 요금 약속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벌써부터 다가오는 총선에서 양당이 통신비를 또 얼마나 인하하겠다고 공약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민간 통신사업자는 온데간데없이 통신시장이 마치 ‘새누리통신’과 ‘새정치통신’으로 재편된 양상이다. 통신요금을 국민투표로 결정하자는 식이다.
통신사업자들은 이런 정치권의 압박이 시장경쟁의 심각한 왜곡이라고 반발한다. ‘무조건 요금만 낮추라면 투자는 하지 말라는 거냐’는 항변도 들린다. 하지만 통신사업자들 스스로 정치권의 간섭을 불러들인 자업자득의 측면도 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이 이른바 유효경쟁이라는 통신정책 틀 속에서 ‘생존’과 ‘성장’을 담보받은 것부터가 그렇다. 보조금 규제가 엎치락뒤치락했던 배경에도 이들의 이해관계가 작용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단통법도 마찬가지다.
규제를 놓고 유불리에 따라 통신사업자들이 혈투를 벌이는 일도 다반사다. 특히 시장지배자 규제를 놓고 줄기차게 싸우는 게 단적인 사례다. 그럴 때는 학계, 연구계, 시민단체까지 패거리가 돼 짝 갈라진다. 최근 결합상품 규제를 놓고 학계에서 정반대 주장이 나오고 정부가 규제를 검토한다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보면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정부나 정치권을 상대로 한 은밀한 로비는 말할 필요도 없다. 통신사업자들 역시 ‘경쟁’과 ‘혁신’보다 ‘규제’ 게임에 길들여져 왔던 것이다. 이러니 소비자로부터 불신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
통신사업자들의 규제 게임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부나 정치권에 그만큼의 끼어들 여지를 새로이 만들어낸다. 요금인가제가 폐지돼도 또 다른 규제가 은근슬쩍 들어설 게 뻔하다. 한마디로 규제의 악순환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쟁도 혁신도 질식당하기 마련이다.
제4통신, 묘수 될까
그렇다면 제4통신 카드는 먹힐까. 기존 통신사업자들은 일제히 반대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제4통신에 시장을 뒤흔드는 일종의 ‘매버릭(maverick·독자 노선파)’ 역할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프랑스는 성공했다. 그러나 지금 같은 규제환경이라면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제4통신이 창의적 발상, 경쟁과 혁신으로 변화를 불어넣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선발자에 대한 규제, 후발자에 대한 온갖 특혜와 보호를 요구하며(이른바 ‘비대칭규제’ 등) 규제 게임의 참여자만 하나 더 늘어나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규제의 악순환은 이렇게 산업 자체를 망친다. 이 나라 정치권과 정부는 통신산업이 다 망가지고 나서야 이를 깨닫게 될 것 같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