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 전진. 오른쪽으로 돌아. 점프. 전진. 깃발.” 한 아이가 명령을 하자 스티로폼으로 만든 게임보드 위에 올라간 학생이 몸을 움직여 차례로 명령을 실행했다. 목적지에 깃발을 꽂자 환호성이 터졌다. 레크리에이션 시간이 아니다. 서울신남성초교에서 진행 중인 소프트웨어(SW) 교육 시간이다. SW 교육이라고는 하지만 컴퓨터는 한 대도 안 보였다. 컴퓨터 없이 SW를 가르치는 이른바 ‘언플러그드 교육(unplugged education)’이다.

기존의 SW 교육은 복잡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활용해 컴퓨터 실행에 적합한 프로그램을 짜는 데 초점을 뒀다. SW 교육이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된 이유다. 최근 언플러그드 교육이 대안으로 떠오른 건 어린이들이 SW에 대한 흥미를 갖고 쉽게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언플러그드 교육은 보드게임이나 크레용 등을 이용해 SW의 원리를 재미있게 익히도록 가르친다. 팀 벨 뉴질랜드 캔터베리대 교수가 아이들에게 SW의 원리를 쉽게 가르치기 위해 고안했다.

네이버에서 SW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이세연 대외협력실 부장은 “SW 교육의 핵심은 천재 개발자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 절차에 기반해 문제를 해결하는 컴퓨팅 사고력(CT)을 키워주는 것”이라며 “학생들에게 자바, C 등 프로그래밍 언어를 직접 가르치는 것은 어렵지만 주변 사물을 이용해 SW의 원리를 설명하면 쉽게 알아듣는다”고 설명했다.

네이버의 소프트웨어 교육 사이트인 ‘소프트웨어야 놀자(campaign.naver.com/software)’에는 다양한 언플러그드 교재가 올라와 있다. 그중 일선 학교에서 가장 반응이 좋은 것은 자동문의 원리를 설명하는 ‘열려라 자동문’ 편이다. 학생들은 각각 센서, 자동문 개폐장치, 행인 등의 역할을 한다. 행인이 자동문 쪽으로 다가가면 센서 역할을 하는 학생이 이를 감지해 자동문 개폐장치에 문을 열라고 명령을 내리는 식이다. 역할극을 통해 학생들은 무심코 지나쳤던 현상의 절차적 원리를 깨닫게 되는데, 이게 바로 SW 설계의 기본 역량으로 이어진다.

■ 특별취재팀=김태훈 IT과학부 차장(팀장), 임근호(국제부), 오형주(지식사회부), 전설리·안정락·이호기·박병종·추가영(IT과학부) 기자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