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앞에서 자신의 성기를 만지며 희롱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이 “피해자가 법정 진술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조계에서는 “형사재판 원칙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는 의견과 “법을 지나치게 형식적으로 적용한 판결”이라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윤모씨(32)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일 발표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결에는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위법이 없다”고 말했다.

윤씨는 2013년 길을 지나는 중학생 A양을 발견하고 집 앞까지 따라갔다. A양의 집 앞에서 자신의 바지 속에 손을 넣고 성기를 만지며 “너희 집 알았으니 다음에 또 보자”고 말했다. 두 달 전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집행유예 확정판결을 받은 윤씨는 같은 법 위반으로 또 재판에 넘겨졌다.

A양이 법정 증인 출석을 거부하자 1심은 증언 없이 피해자 진술조서를 증거로 인정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진술조서는 작성자가 법정에 나와 “내가 작성했다”고 말해야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사망 소재불명 등 예외인 상황에서는 진술 없이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나이와 피해 내용 등을 고려할 때 법정 진술을 위해 구인까지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윤씨에게 징역 6개월의 실형과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8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2심의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형소법의 예외 사유는 사망이나 기억상실 등으로 한정한다”며 윤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학업이나 불안 등을 이유로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는데도 검찰은 물론 1심 법원도 구인절차를 밟지 않았다”며 “이 사건 증언 거부는 예외적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A양 진술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봤다. 대법원도 이런 판단을 유지했다.

김보람 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나이 어린 피해자의 법정 증언으로 2차 피해가 우려되는데도 법원이 법조문을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해석했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