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이 시대 아버지의 삶
미국과 일본엔 6월에 ‘아버지의 날’이 있다. 한국의 헌신적인 어머니들의 위상에 가려, 시대의 요구에 따라 묵묵히 열심히 살아온 우리 ‘아버지’들을 그동안 과소평가했던 것은 아닐까.

필자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어느덧 14년이 흘렀다. 바쁜 일상 속에 크고 작은 일로 지칠 때면 종종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항상 일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다소 가부장적이고 보수적 성향이 강했다. 아버지는 1970년대 대학생이 된 큰언니의 판탈롱 바지를 보고 꾸중하시고 집안을 돌아다니는 쥐를 잡지 못하는 아들을 나무라셨다. 대학생이 된 내겐 외숙모께서 사주신 예쁜 보라색 구두가 “학생답지 않다”며 못 신게 하셨다.

함경남도 북청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형을 따라 가방 하나 메고 남한으로 내려오신 아버지.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삶은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과 다름없었다. 전쟁을 겪었고, 한 집안의 가장이자 산업의 역군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 세대는 어려운 시절을 버텨낼 강인함이 요구되던 시대이다 보니 가족과 편안한 시간을 즐길 여유를 갖지 못한 것 같다.

지난달 우리 회사 직원이 한 시민단체로부터 ‘좋은 부모상-반반아빠상’을 수상했다. 네 자녀를 둔 그는 회사에서도 열심히 일하고, 교사인 아내와 둘이서 아이들을 돌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우리 회사는 평소 출산을 장려하고, 일·가정 양립을 위한 다양한 가족친화경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넷째 아이 출산 소식은 기존 셋째 아이까지 주던 혜택을 넷째까지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 바쁜 핵가족 시대에 젊은이들이 부모가 된다는 부담감을 선뜻 짊어지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저성장·저출산 문제가 국가적 과제가 된 지금, 네 아이의 아빠가 된 용기만으로도 칭찬해주고 싶다.

퇴근 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주말에는 가족 텃밭도 가꾸며, 종종 인터넷으로 가족 여행을 계획하는 그는 요즘 세대의 ‘부드러운 아빠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육아와 집안일은 남편이 아내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라는 그의 따뜻한 수상소감을 들으며, 그를 포함한 한국의 모든 아버지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격려를 보낸다.

김선희 < 매일유업 대표이사 사장 seonheekim@mae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