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지오 마르치오네, 몰락 피아트·크라이슬러 더 강하게…차 업계 '부활의 아이콘'으로 뜨다
미국 프로미식축구(NFL)의 최강자를 가리는 제45회 슈퍼볼 경기가 열린 2011년 2월6일. 경기에 앞서 2분 남짓 방영된 미국 자동차회사 크라이슬러의 광고가 미국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광고에 등장한 고급 세단 ‘크라이슬러 200’은 미국인들의 애국심에 불을 지폈다. 광고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미국인이 적지 않았다. 이 차량은 그해 3월 미국 내 판매량이 31%나 증가했다. 2009년 파산보호 신청으로 자존심을 구겼던 크라이슬러가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2011년 5월 크라이슬러는 미국과 캐나다 정부로부터 받았던 구제금융 채무 76억달러(약 8조4300억원)를 모두 갚았다. 당초 예정보다 6년이나 빠른 조기 상환이었다.

자동차업계 ‘부활의 아이콘’

크라이슬러의 빠른 회생에는 2009년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회장(63)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그는 2004년 누적 적자가 120억달러에 달하는 이탈리아 자동차회사 피아트를 맡아 2년 만에 4억달러의 흑자를 내는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CEO로 부임한 직후 마르치오네는 대대적인 기업문화 개혁에 나섰다. 임원들이 직원들과 직접 대화하지 않고 비서를 통해서만 연락하는 피아트의 관료주의적 문화에 경악한 그는 외부에서 젊은 임원과 중간 관리자를 대거 영입했다. ‘자동차업계의 애플이 되자’는 슬로건을 내세워 디자인 역량을 강화했다. 의사결정 과정도 단순화하고 회사 내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정리했다.

그 결과 2006년부터 피아트는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109년 피아트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며 완벽하게 부활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피아트 CEO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위”라고 평가했는데 마르치오네 회장은 피아트를 회생시켜 세계 자동차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와 함께 미국 자동차업계 ‘빅3’로 불리던 크라이슬러도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2009년 피아트가 위기에 처한 크라이슬러의 지분 20%를 인수하면서 마르치오네는 크라이슬러의 CEO를 맡았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피아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직원들과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크라이슬러 본사 꼭대기층에 있던 CEO 집무실을 연구실 바로 옆 4층으로 옮기며 직원들과 직접 대화했다. 26개 조직으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았지만 임원들에게 의사결정 권한을 넘겨줘 책임감 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가 경영을 책임진 2년 만에 크라이슬러는 명실상부한 미국 자동차업계의 ‘빅3’로 되살아났다.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CEO

마르치오네는 자신의 가장 큰 자산은 다양한 분야에서 쌓은 경험이라고 말한다. 그는 1952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14세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토론토대에서 철학을 전공하며 인문학적 소양을 길렀다. 졸업한 뒤에는 경영대학원과 로스쿨에서 회계와 법을 공부했다. 이후 회계법인과 화학회사 등에서 법률·세무 업무를 하다 1994~2000년 스위스의 유통기업 알그룹에서 회장을 지냈다. 2004년 1월 피아트 가문의 눈에 띄어 피아트에 합류했다.

마르치오네 회장은 글로벌 CEO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일하는 ‘워커홀릭’으로 유명하다. 그는 유럽시장을 챙기기 위해 매일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고 1주일에 7일을 일한다. 5~6개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수시로 회사 메일을 확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크라이슬러 임원의 말을 인용해 “마르치오네는 미국이 휴일이면 유럽에 가서 일하고, 유럽이 쉬는 날이면 미국에서 일한다”고 전했다.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CEO’로 선정하기도 했다.

애연가로 알려진 그는 하루에 3갑 이상의 담배를 피운다. 회의할 때도 담배를 피운다고 한다. 주말과 휴일에도 일하는 데다 사무실에서 피웠던 담배 냄새 탓에 한때 부인의 의심을 받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대개 담배는 휴가나 야외활동 등 여가를 즐길 때 피운다는 이유에서다.

“겸손과 속도가 가장 중요하다”

마르치오네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솔선수범’과 ‘속도경영’으로 대변된다. 그는 업무시간의 60%를 직접 신차를 몰거나 세계 각국의 지사를 방문하는 데 사용한다. 사무실에 있더라도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컴퓨터가 켜 있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유럽자동차제조업협회 회장과 다국적 금융기업 UBS 비상임 부회장 등을 지내며 팔방미인 같은 자질도 드러냈다. 2007년 11월 마르치오네는 피아트의 고급 스포츠카 페라리를 몰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다 대형사고가 났지만 전혀 다친 곳이 없어 페라리의 우수성을 온몸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humility)과 속도”라고 강조했다. “모든 임직원이 저와 아무 때나 연락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연락하면 늦어도 몇 분 내에 의사결정을 합니다. 물론 저는 여행을 많이 합니다. 한 달에 두세 차례 이탈리아와 미국을 왔다갔다 하며 대부분 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내는 편입니다. 하지만 직원들은 언제든지 저와 연락할 수 있습니다.”

마르치오네 회장은 지난 3월 메리 바라 GM CEO에게 두 회사의 합병을 제안하는 이메일을 보냈다는 사실이 최근 알려지면서 세계 자동차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비록 제안은 거절당했지만 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 자동차회사들의 합병이 필요하다는 점을 꾸준히 강조하고 있다. 자동차 시장이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상황에서 너무 많은 업체가 난립해 있다는 것이다. 피아트와 크라이슬러를 단기간에 살려낸 그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세계 자동차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