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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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구 기자 ]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은 후발 주자다. 연구기관으로 설립돼 10년을 갓 넘었다. 교육기관 성격을 갖춘 것은 보다 최근이다. 2011년 대학원 과정에 이어 작년 학부 과정을 신설했다. 대학구조조정 시대에 신생 대학이 된 것이다.

DGIST는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남을 따라하지 않고 스스로 새 모델을 만들었다. 무(無)학과 단일학부의 파격 커리큘럼을 시도했다. 학생들은 대학 4년간 특정한 전공 없이 여러 기초분야를 두루 배운다. 기존 학과별 전공지식 대신 기초지식을 쌓는 데 주력해 융복합의 바탕을 다지는 게 핵심이다.

“최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주최 국가발전포럼에서 DGIST의 교육모델을 소개했어요. 특히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도 ‘기초학부 교육은 무학과로 운영하는 방향이 맞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죽은 지식에 얽매이지 않는 기초가 탄탄한 인재는 급변하는 지식을 금방 습득할 수 있어 CEO들도 그걸 바랍니다.”

지난 3일 서울 무교동 DGIST 서울홍보센터에서 만난 신성철 총장(63·사진)의 설명이다. 이같은 DGIST의 교육실험엔 신 총장의 역할이 컸다. 지난 2011년 초대 총장으로 취임해 학교 운영의 밑그림을 그렸다. KAIST 부총장까지 지낸 노하우를 바탕으로 설계와 실행 단계를 진두지휘했다. 그는 올 초 연임에 성공해 학부 첫 졸업생이 나오는 정착 단계까지 책임지게 됐다.

“이미 학과 체계가 뿌리내린 기존 대학들은 쉽사리 할 수 없는 시도죠. 처음엔 무학과 교육모델이 이상적이긴 하지만 너무 앞서나간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연착륙 중이라 주변의 관심과 기대가 높아요. DGIST의 교육모델이 성공하면 국내 다른 대학에도 전파될 겁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미래전략분과의장을 맡고 있는 신 총장은 시대의 키워드로 ‘협업적 혁신’을 강조했다. 20세기 혁신을 폐쇄적 혁신으로, 현재 추구하는 혁신을 오픈 이노베이션(개방적 혁신)으로 규정한 뒤 보다 업그레이드된 협업적 혁신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개별 프로세스(과정) 진행 후 오픈하는 수준을 넘어 애초부터 경계를 허문 융복합이 이뤄져야 아이디어와 스피드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다는 것. 그는 “정부와 민간, 산·학·연 간 협업적 혁신으로 우리가 보유한 자원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과 과학기술, 산업을 아우르는 해법으로는 융복합 시대에 걸맞은 가치관 교육, 창업 리더 육성 등을 꼽았다.

신 총장은 “창업엔 단지 돈 버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와 세계의 변화에 공헌하겠다는 ‘사회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세계 최고 부자이자 최고의 기부자인 빌 게이츠가 대표적 사례”라며 “그간 우리 교육은 기능과 지식 전수에 매몰돼 열심히 연구하고 논문 쓰는 학생은 길렀지만 ‘가치관을 갖춘 리더’는 못 길러냈다. 앞으로 이런 부분에 대한 교육이 요구된다”고 역설했다.
[2015 대학총장 인터뷰] 포스코 회장도 칭찬한 'DGIST 교육실험' 이끄는 신성철 총장
- 초대 총장에 이어 연임했다. 2기 체제의 비전은 뭔가.

“2월 말 취임했으니 두 번째 임기도 100일 가까이 지났다. 초대 총장으로선 학교가 나아갈 전체적 방향을 제시하고 큰 틀의 전략을 세웠다. 이번 임기엔 완성도를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작년 도입한 무학과 단일학부 체제 첫 학생들이 2학년이 됐다. 1기 졸업생을 배출하는 한 사이클(주기)을 마치기까지 융복합 기초학부교육의 철학을 심어가는 게 당면 과제다.”

- 무학과 단일학부의 성과는 어떻게 보나.

“비전도 중요하고 전략도 중요하지만 결국 실현이 돼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연착륙 하고 있다. 작년 첫 신입생 모집이 중요했는데 약 10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사실 처음엔 무학과 체제가 이상적이긴 하지만 너무 앞서간다, 현실성이 떨어진다고들 했다. 그런데 이제 점점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얘기하더라. 누구보다도 기업 CEO들이 그렇게 주문한다.”

- 혁신적 교육모델이란 평가가 많다고.

“최근 과총 주최 포럼에서 DGIST의 혁신교육모델을 소개한 적 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기초학부는 저렇게 무학과로 해야 한다’고 하더라. 과학기술이 워낙 빠른 속도로 변화하지 않나. 전공지식을 배우는 의미가 대폭 축소됐다. 기존 학과 체제보다는 전공을 두지 않고 기초지식을 튼튼히 해 새로운 지식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이 맞다고 판단했다.”

- 대학원 전공과 학교 안에 연구부가 같이 있는 점도 융복합 성격과 맞다.

“대학원 개설 전공은 전통적 학과와 성격이 좀 다르다. 융복합에 초점을 맞춰 신물질(Materials) 정보통신(ICT) 로봇(Robot) 에너지(Energy) 뇌과학(Brain) 뉴바이올로지(New Biology) 6개 전공을 운영하고 있다. 통칭해 ‘미래브레인(MIREBraiN)’이라 부른다. 학교 내 기술출자기업과 연계, 연구가 연구에 그치지 않고 사업화하는 게 관건이다. 지식이 매출로 이어지고 매출 일부가 연구에 재투자되는 선순환구조 구축이 창조경제의 핵심이다.

DGIST는 학사부와 연구부가 공존하는 유일한 대학이다. 이번에 조직 개편을 통해 연구본부를 융합연구원으로 승격시켰다. 연구원·교수·학생이 어울려 경계를 넘나드는 선진국형 연구소로 만들어보고 싶다. 우리나라는 교수와 연구원 간 장벽이 있어 학연상생이 어렵다. 석·박사 마치고 연구원으로 가버리니까, 학연상생이 안 되면 연구의 노하우가 쌓일 수 없다. 융합연구원을 통해 교수와 연구원 간 벽을 없애 학연상생의 롤모델을 선보일 계획이다.”

-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이유가 있다면.

“DGIST는 소규모 신생기관이다. 약점이지만 장점이기도 하다. 기존 대학들이 선뜻 하기 어려운 선도적·혁신적 모델을 시도할 수 있다. 앞서 말한 것들이 성공하면 우리 이공계 교육에 굉장한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이다. 차별성, 선도성, 국제적 수월성, 이 세 가지가 경영철학이다. 대학이 줄어드는 시대 아닌가. 후발 주자가 남들 하는 것과 똑같아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2015 대학총장 인터뷰] 포스코 회장도 칭찬한 'DGIST 교육실험' 이끄는 신성철 총장
- 완성도를 높이겠다고 했는데, 예를 들자면 어떤 게 있을까.

“DGIST는 100% 전자교재를 사용해 가르친다. 1970년대에 대학을 다녔는데 지금 대학 교재가 그때 그 교재들이다. 한 마디로 죽은 지식을 가르치는 거다. 반면 전자교재는 시의적절하게 새로운 지식을 집어넣을 수 있다. 공부하다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클릭해 바로 관련 내용을 배울 수 있는 크로스오버 기능이 탑재돼 있다. 진화하는 교재다. 처음엔 메모 기능이 없었는데 사용해본 학생들 건의로 만들었다. 노하우를 쌓아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 중이다.”

- 연구원이 아니라 창업리더를 기르겠다고 했는데.

“세 가지를 말한다. 첫 번째 도전정신, 두 번째 기술창업이다. 기술창업이 가능하도록 학생들이 4년까지 휴학할 수 있게 했다. 세 번째는 가치관 교육이다. 창업의 목적이 돈 버는 데 그치지 않아야 한다. 돈을 벌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있어야 한다. 이 사회와 세계의 변화에 공헌하겠다는 가치관이 생기면 더욱 열심히 하게 된다. 그래서 ‘사회기업가정신’을 강조한다. 학생들이 학부에서 사회기업가정신, 대학원 과정에서 기술경영 과목을 이수하게 했다.”

- 흔히 말하는 사회적 기업과는 다른 개념 같다.

“더 확장된 개념이다. 대표적 사례로 빌 게이츠를 들 수 있다.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 부자지만 최고의 기부자이기도 하다. 세계의 질병을 고치겠다는 가치관이 있지 않나. 갈수록 국가의 역할은 줄어들고, 민간이 보완하는 부분이 늘어날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우리 교육이 지금까지 기능만 전수하고 지식만 가르쳤다. 그걸 갖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못 가르친 것이다.”

- 새 인재상으로 창의성, 융복합 외에 협업을 강조했는데 어떤 맥락인가.

“디지털 혁명이 가속화되고 있다. 10년 안에 전세계 인구가 인터넷상에서 이어지는 ‘초(超)연결사회’가 올 것이다. 이 사회의 특징이 지식 공유와 협업이다. 기술 발전에 따라 많은 부분을 로봇에 뺏기고 새로운 지식 창출과 가치 판단, 스토리텔링 능력 등이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남게 될 것이다. 협업, 의사소통능력, 세계시민의식 등 가치관적 요소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 과학기술 미래전략분과를 맡고 있다. 지금 시대의 키워드를 꼽아 달라.

“가장 중요한 게 융복합이다. 학문 간, 기관 간 경계를 뛰어넘어 ‘협업적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20세기 초엔 폐쇄적 혁신을 했고 지금은 오픈 이노베이션을 하고 있다. 협업적 혁신은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이 개별 프로세스를 진행한 다음 오픈하는 것이라면 협업적 혁신은 처음부터 열어두고 같이 해나가는 것이다. 그래야 스피드와 아이디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협업적 혁신을 통해 우리가 가진 자원을 극대화해야 한다.”

- 융복합 취지로 문·이과 통합교육과정이 추진된다. 어떤 방향이 맞을까.

“사실 초기에 통합교육과정을 주장했는데 지금 방향은 반대가 됐다. 수학·과학이 이과 수준이 돼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지금 추진되는 통합과정은 문과 수준이다. 이공계에선 학력 저하를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 21세기는 과학기술 시대다. 미국도 경쟁력 강화방안으로 수학·과학 교육 강화를 첫 손에 꼽았다. 국가 차원 보완이 필요하다. 통합과정을 이과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학력 편차가 생길 경우 클리닉 프로그램 등 후속 조치를 하면 되지 않겠나.”

◆ 신성철 총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응용물리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석사,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KAIST 교수로 재직하며 부총장 기획처장 국제협력실장 등의 보직을 지냈다. 한국물리학회장·한국자기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미국물리학회(APS) 펠로(석학회원)로 선임됐다. 2007년 과학기술최고훈장 창조장(1등급), 2012년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았다. 현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미래전략분과의장을 맡고 있다. 2011년 DGIST 초대 총장으로 부임해 올해 초 연임했다.


☞ "DGIST '무(無)학과 단일학부 실험' 지켜보세요"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 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