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석화 씨가 오는 18일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에서 개막하는 모노드라마 ‘먼 그대’로 5년 만에 연극무대에 선다. 산울림소극장 제공
배우 윤석화 씨가 오는 18일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에서 개막하는 모노드라마 ‘먼 그대’로 5년 만에 연극무대에 선다. 산울림소극장 제공
“오늘 점심에 저, 박정자·윤소정·손숙 선배 이렇게 넷이 ‘화려한 외출’이라며 뭉쳤어요. 런던에 있다가 다시 연극무대로 돌아온 걸 축하한다면서요.”

올해로 연기 인생 40주년을 맞은 배우 윤석화(59)가 5년 만에 연극무대에 선다. 오는 18일부터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하는 ‘먼 그대’를 통해서다. 먼 그대는 1983년 이상 문학상을 받은 서영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모노드라마(1인극)다. 윤석화가 1인 4역에 각색·연출까지 맡은 이 작품은 30년간 그에게 연극을 가르쳐준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79)의 연출 60주년 헌정무대다. 서울 동숭동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연습에 한창인 그를 만났다.

“언뜻 보면 남녀의 이야기 같지만 남녀를 뛰어넘는 삶의 이야기예요. 1983년 먼 그대를 처음 읽은 그 순간부터 꼭 연극무대에 올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왔어요. 사실 살 떨려요. 이왕 임 선생님께 선물 드릴 거, 잘해야 하지 않겠어요? 서영은 선생님에게도 누가 되면 안 되고요. 완전히 사면초가예요.”

먼 그대는 별 볼 일 없는 출판사에서 교정 일을 하는 노처녀 문자가 고통스러운 삶을 이겨내는 모습을 담았다. 10년 동안 유부남 한수의 첩으로 살며 대가는커녕 돈과 사랑과 딸까지 빼앗기며 살아가지만, 세상에 복수하는 방법은 그들을 더 사랑하는 것임을 터득한다. 그들이 주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더 희생할 때 낙타가 제 몸의 지방을 서서히 생명수로 녹여 열사의 땅 한가운데로 가듯 자신도 최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깨닫는다.

“이 작품은 비극이라기보다 사실 ‘고난의 축복’이라는 주제의식을 담은 작품입니다. 작품의 주제의식을 단순한 낭독이 아니라 연극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나타내기 위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수화로 표현할 예정이고요.”

문자가 운명적인 사랑인 한수를 만났을 때의 에너지 충만한 모습과, 빛나던 것이 소멸해가다 다시 희망으로 되살아나는 과정은 간단한 몸짓으로 표현한다. 새로운 작품을 각색하는 만큼 고생도 많다. “하루 2시간밖에 못 자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임 선생님의 연출 60주년에 맞춰야 한다는 일념으로, 특유의 무모함을 무기로 가고 있죠.”

‘고도를 기다리며’ ‘산불’ 등을 연출한 임 대표와 윤석화의 인연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6년 윤석화가 기획, 연출, 주연한 뮤지컬 ‘송 앤 댄스’를 본 임씨가 지인에게 윤석화를 칭찬했다. 이를 전해 들은 윤석화는 그 길로 ‘하나를 위한 이중주’를 들고 임씨를 찾아가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임씨가 이를 흔쾌히 수락하며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 1989년 임씨의 권유로 ‘목소리’라는 작품으로 모노드라마에 처음 발을 들였다. 이후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영영이별 영이별’ ‘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 7편의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다.

“임 선생님은 ‘호랑이’로 유명하지만 제가 장기공연을 할 때면 손수 빈대떡도 구워주시곤 했어요. 늘 저에겐 자상한 아버지 같고, 삼촌 같고, 오빠 같은 분이죠. 이번 공연도 미리 와서 봐달라고 말씀드렸더니 ‘너한테 다 맡길 거야’라고 하셔서 더 떨려요.”

그는 자신에게 먼 그대는 결국 ‘관객’이고 ‘연극’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연극이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가장 좋아하는 연극 속 한 구절을 묻자 그는 “이 장면에서 그리스 비극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그 정도의 에너지까지 갈 수 있으면 좋겠다”며 이렇게 들려줬다.

“고통이여 나를 찔러라. 너의 무자비한 칼날이 나를 갈가리 찢어도 나는 산다. 다리가 없으면 몸통으로, 몸통이 없으면 모가지만으로도. 지금보다 더한 고통 속에 나를 세워놓더라도 나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거야.”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