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격해지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의 불씨가 한국으로 번졌다.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3일 워싱턴DC에 있는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와 한국국제교류재단(KF) 공동 주최로 열린 한·미전략 대화 세미나에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한국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공개적으로 한국 정부의 입장 표명을 촉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같은 발언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대한 한국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러셀 차관보는 “한국은 국제질서에서 주요 주주로서 역할과 더불어 법치국가와 무역국가로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국제 시스템에서 번창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이번 영유권 분쟁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보편적인 원칙과 법치를 위해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세력 확장에 반대하는 미국을 지지해 달라는 뜻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에 분명한 태도를 요구하는 압박용 메시지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북한의 도발 위협에 대응하고 비핵화 대화를 진전시키기 위해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인 우리 정부에 미국의 이런 요구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정부는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길 바란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발표했다.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4일 정례 브리핑에서 “남중국해에서 최근 전개되는 상황에 관심을 갖고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정부는 남중국해 당사국 행동선언이 완전하고 효과적으로 이행되고 중국과 아세안 간 협의 중인 남중국해 행동규칙도 조속히 체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앞으로 다자회의에서 이 같은 뜻을 지속적으로 밝힐 계획이다. 그러나 한국의 진전된 입장을 이끌어내 국제사회에서 명분을 쌓으려는 미국의 압박이 거세질 것이란 관측이다. 미국은 지난달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제도(베트남명 쯔엉사·중국명 난사군도)에 해상 초계기를 파견해 중국과 대치하기도 했다.

남중국해 남부 해상에 여러 개의 섬으로 이뤄진 스프래틀리 제도는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로 중국과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필리핀, 대만, 베트남 등 6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이곳에 인공섬을 건설하고 있으며 이에 맞서기 위해 미국은 남중국해에 군함과 군용기 배치를 검토 중이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