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칼럼] 핀테크산업, 사전규제로는 성장 못한다
날이 갈수록 국경을 뛰어넘는 인터넷·모바일 금융의 파워가 커지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 금융권의 화두는 ‘핀테크(금융+기술)’다. 국내에선 왜 지금까지 주목을 받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로 핀테크산업은 국내 정서와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생활을 더욱 빠르고 편리하고 쉽게 만들려는 DNA가 강하고 정보기술(IT)를 통해 이미 그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이 융합한 핀테크는 일반 국민에게는 단어도 그렇지만 활용분야도 아직 명확하지 않다. 알리페이, 애플페이에 이어 카카오페이, 삼성페이 등 새로운 국내 지급결제수단이 나오면서 ‘핀테크는 간편 결제시스템’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다. 이 때문에 신용카드가 널리 보급돼 있는 국내에서는 핀테크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끼는 이도 많다.

그러나 핀테크는 지급결제뿐 아니라 또 다른 은행기능이라 할 수 있는 대출, 자본시장의 자산관리운용, 보험 등 전 금융권을 아우른다. 최근 금융위원회에서 발표한 ‘핀테크산업 활성화를 위한 단계별 추진전략과 향후과제’를 보면 이슈가 된 인터넷 전문은행에서부터 펀드를 한 곳에 모아 쉽게 자산을 관리할 수 있는 온라인 펀드슈퍼마켓, 오는 12월 출범예정인 온라인 보험슈퍼마켓까지 IT와 결합해서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금융서비스가 핀테크 개념에 포함된다.

모든 금융서비스가 핀테크와 연결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핀테크가 활성화되면 각자 생업에 열중하면서도 필요한 은행업무를 볼 수 있고, 펀드 또는 보험상품을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듯 쉽게 살 수 있으며, 자산관리나 대출도 복잡한 서류 없이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금융소비자에게 혁신적인 편리함과 이익을 줄 수 있는 만큼, 시장수요와 산업으로서의 잠재성장성도 엄청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핀테크업체는 업체대로 금융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금융회사들도 핀테크 서비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협력이 만만치 않다. 핀테크 인프라구축 미비도 구체적인 핀테크 시제품 출시에 애로요인이 되고 있다. 핀테크의 대표적 인프라인 빅데이터의 경우 국내외 차이는 현격하다. 미국, 영국은 물론 중국까지도 거의 모든 금융권역에서 빅데이터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반면, 우리는 불명확한 신용정보법령 규정, 금융회사들의 빅데이터 활용에 대한 인식부족 등으로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예컨대 미국 자동차보험사 프로그레시브의 경우 자동차 운행기록정보라는 빅데이터를 통해 보험 재가입 여부까지 결정하는 데 비해, 국내 보험업계에선 업무효율개선 정도에 활용할 뿐이다.

그럼 가능한 한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금융산업을 효율화하고 새성장산업으로서의 핀테크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핀테크업체, 금융회사, 정부당국 간 협력과 활발한 소통채널이 절실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말 핀테크업체와 금융권이 서로 빈곳을 채우고 상생할 수 있도록 판교 테크노밸리에 ‘핀테크 지원센터’를 설립했다. ‘핀테크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첫걸음인 셈이다. 금융위원회는 핀테크산업 육성을 위해 대대적으로 규제를 정비할 것이며 사전예방규제에서 사후관리규제 방안, 민간자율의 위험관리체제 구축, 빅데이터산업 관련 규제완화 방안 등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한다.

한국은 전통적인 IT 강국에다 일단 방향만 명확히 정해지면 모든 국민이 힘을 모아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강점이 있다. 지난 데모데이 때 영국의 ‘레벨39’도 한국 핀테크 기술력을 높이 평가했다. 핀테크산업이 국내 금융산업의 효율화뿐 아니라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진출, 금융수출에 효자역할을 하기 바란다.

정유신 < 핀테크지원센터장·서강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