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앞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덕인(김정은 분)은 어릴 때 헤어진 생모(김해숙 분)를 훔쳐보면서 묘한 슬픔에 젖는다. 식당에서 일하는 생모는 세파에 찌들어 사는 고단한 인생이다. 덕인은 아들을 사고로 잃은 뒤 경찰직을 그만두고 식당을 운영한다. 남편(인교진 분)은 바람이 나 다른 여자와 살고 있다. 새 남자 진우(송창의 분)가 덕인 곁으로 다가왔다. 남편은 진우의 존재를 알고서는 질투심에 불탄다. 덕인과 진우 주변에는 온갖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삶의 애환을 그려낸다.

MBC TV 주말드라마 ‘여자를 울려’(극본 하청옥, 연출 김근홍 박상훈)가 지난달 31일 자체 최고 시청률인 21.8%(TNmS 수도권 기준)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1위에 올랐다. 토·일요일 오후 8시45분에 시작하는 이 드라마는 남성 50대와 여성 60대 이상이 시청률 상승을 주도했다. 지난 4월18일 첫 회에 비해 남성 50대 비중은 5.2%에서 10.8%로, 여성 60대 이상은 17.6%에서 24.3%로 높아졌다. 비결이 뭘까.

우선 ‘로코퀸(로맨틱코미디 여왕)’으로 각인된 김정은의 연기 변신이 주효했다. 전직 강력반 여형사인 덕인은 평소 인심 좋은 밥집 아줌마로 일하다가 아이들이 위기에 닥친 순간 불량배들 앞에 홍길동처럼 나타나 폭력으로부터 지켜준다. ‘일진’ 아이들과 전쟁을 치러내는 과정에서 부모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교감하면서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덕인 역을 위해 액션스쿨까지 다닌 김정은은 미모 대신 소탈함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얻었다. 드라마는 주말극인데도 단순한 가족사에 머무르지 않고 학원폭력 등 사회 문제로 이야기를 확장해 신선함을 더했다.

다채로운 여성 캐릭터들도 볼거리다. 부잣집 진우 집안의 은수 역 하희라와 홍란 역 이태란 등은 ‘흥행의 법칙’을 아는 연기자들이다. 착한 배역을 주로 해온 하희라는 여기서 기구한 운명으로 살면서 때로는 순하고, 때로는 독한 야누스 같은 여인으로 바뀌었다.

이태란은 만인의 사랑을 받는 화려한 여배우의 모습 뒤에서 남편의 애정을 갈구한다. 복잡한 내면을 잘 소화해낸다. 하희라와 이태란이 서로 부딪칠 때는 예상치 못한 반응들이 나온다.

김지영이 연기하는 김정은의 시어머니 캐릭터도 드라마에 흔한 시어머니 역과 거리가 있다. 자신의 아들보다 며느리를 더 믿고 의지한다. 바람난 아들에게 “나는 내 며느리 품에서 죽겠다”고 단호히 말한다.

치열한 오디션을 거친 신예들이 선배 연기자들과 조화를 이룬다. 아이돌그룹 엠블랙 멤버 천둥이 은수의 아들 현서 역할을 맡았다. 진선규, 지일주, 한보배 등도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드라마의 속도감도 빼놓을 수 없다. 주말 드라마는 통상 50부작이지만 이 작품은 10회를 줄인 40부작이다. 덕분에 늘어짐 없이 빠른 전개와 호흡을 보여준다. 초반부터 덕인 남편의 불륜이 드러났고, 덕인은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절반이 채 안 된 시점에서 덕인과 새 남자와의 관계도 많이 깊어졌다. 덕인의 생모가 새롭게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졌다.

섬세한 연출은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인물들의 감정 장면마다 늦봄에 어울리는 화사한 풍경이 어우러지며 세밀하고 미묘한 감정들을 포착해냈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