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변이 안됐다
병실 안 고농축 바이러스 문 밖으로 퍼져나가
면역력 약한 고령환자 많아 더 빨리 전염
최초로 제기됐던 가설이 바이러스 유전자 변이다. 국내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사람 간 전염성이 강해졌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7일 국립보건연구원 분석 결과 변이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에 유입된 메르스 바이러스의 유전자 염기서열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행한 바이러스와 거의 일치했다.
같은 바이러스라도 환경에 따라 활동력이나 생존력은 다를 수 있다. 기온이나 습도가 바이러스 활동력에 영향을 끼친다. 한국은 중동보다 기온이 낮고, 습도는 높다. 송대섭 고려대 약학대학 교수는 “한국의 낮은 기온과 적절한 습도가 바이러스가 생존하기에 더 적합한 환경을 만든 것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통풍이 잘되지 않는 병실 환경이 바이러스 전파력을 높였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가장 많은 환자가 발생한 평택성모병원엔 병실마다 있어야 할 환기구와 배기구가 없었다. 창은 크지 않고 밑으로 여는 형태였다.
○일종의 ‘공기전파’ 됐나
제한적인 형태의 공기전파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주장해온 메르스 주요 감염 경로는 비말(飛沫) 전파다. 공기가 아니라 환자가 기침 재채기 등을 할 때 나오는 침방울을 통해 감염된다는 것이다. 이 비말이 튀는 범위는 큰 것은 1m, 작은 것은 2m밖에 안 된다.
하지만 평택성모병원 병실에선 침상에서 2m가 넘는 높이의 천장형 에어컨 필터에서도 바이러스 조각(RNA)이 발견됐다. 비말이 아니라 더 작은 형태의 에어로졸(수분 미세입자) 전파가 가능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에어로졸 상태가 된 침방울 입자는 공기 중에 떠서 훨씬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다. 다른 병실과 다른 층에도 닿을 수 있다.
평택성모병원 내 환자가 발생한 5개 병실에서 에어컨 필터를 꺼내 조사한 결과 3개에서 바이러스 조각이 나왔다. 병원 내 문고리와 화장실, 가드레일에서도 검출됐다.
역학조사반 관계자는 “평택성모병원의 경우 밀폐된 실내에서 일어난 특이한 사례”라며 “개방된 야외에서의 공기 감염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면역력 약할수록 전파력 강해
몇몇 환자가 보유한 바이러스가 아주 활동적이거나 강했을 수도 있다. 환자가 배출한 강력한 바이러스가 폐쇄적인 환경과 만나면 병실 안이 고농도 바이러스로 꽉 차고, 문이 열리는 순간 기압 차가 생겨 밖으로 빠져나갈 가능성도 있다.
고은이/마지혜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