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스피드 경쟁 앞서려면
학문 경계 허문 융복합교육 필수
2년째 전공없이 다양한 기초 학습
지난 3일 서울 무교동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서울홍보센터에서 만난 신성철 총장(63·사진)은 시대의 키워드로 ‘협업적 혁신’을 강조했다. 개별 프로세스(과정) 진행 후 오픈하는 수준을 넘어 애초부터 경계를 허문 융복합이 이뤄져야 아이디어와 스피드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와 민간, 산·학·연 간 협업적 혁신으로 우리가 보유한 자원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DGIST는 작년부터 무(無)학과 단일학부 교육을 실험하고 있다. 대학 4년간 학생들이 특정한 전공 없이 여러 기초분야를 두루 배우는 것이다. 융복합교육 선도모델을 목표로 신 총장이 직접 이 같은 파격 커리큘럼을 설계했다. 그는 초대 총장에 이어 올초 연임에 성공해 정착 단계까지 책임지게 됐다.
“최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주최 국가발전포럼에서 DGIST의 교육모델을 소개했어요. 특히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도 ‘기초학부 교육은 무학과로 운영하는 방향이 맞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신 총장은 “과학기술이 급변하고 있어 세부 전공지식을 배워도 10년만 지나면 쓸모가 없어진다. 특히 컴퓨터·바이오 등의 분야는 워낙 변화가 빨라 5년만 지나도 죽은 지식이 돼버린다”며 “기존 학과별 전공지식을 배우는 대신 4년간 기초지식을 쌓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기초가 탄탄하면 새로운 지식도 금방 습득할 수 있어 CEO들도 그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미 학과 체계가 뿌리내린 기존 대학들은 쉽사리 할 수 없는 시도”라며 “처음엔 무학과 교육모델이 이상적이긴 하지만 너무 앞서나간다는 평이 많았는데 연착륙 중이라 주변 관심도 높다. DGIST의 교육모델이 성공하면 국내 다른 대학에도 전파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신 총장의 경영철학은 확고했다. 기존 대학도 사라지는 시대인 만큼 신생 대학인 DGIST의 승부수는 차별성, 선도성, 국제적 수월성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새로운 창업모델과 인재상의 벤치마킹 모델로는 빌 게이츠와 매사추세츠공대(MIT)를 꼽았다.
“창업 목적이 단지 돈을 버는 데 그치면 안 됩니다. 사회와 세계의 변화에 공헌하겠다는 가치관이 필요해요.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의 부자지만 최고의 기부자이기도 하잖아요. 확장된 개념의 ‘사회기업가 정신’이죠. 스탠퍼드대도 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MIT의 교육 목표는 ‘21세기에 국가와 세계에 가장 잘 기여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이거든요. 그동안 우리 교육은 기능과 지식 전수에 매몰된 측면이 있어요. 이젠 이런 가치관 교육이 요구됩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