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1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더 파워’.
오는 21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더 파워’.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더 파워’는 여러 면에서 흥미롭고 특별하다. 국립극단과 명동예술극장이 지난 4월 통합한 이후 첫번째로 무대에 올린 국립극단 제작 연극이다. 통합 전이었다면 극단이 극장을 빌려 쓰는 대관 공연이었겠지만 이젠 극장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체 제작해 올리는 작품이 됐다. 보기에 따라 통합 이후 명동예술극장의 위상과 정체성이 어떻게 변화할지 가늠자로 삼을 수 있는 무대다.

‘더 파워’는 이런 점에서 파격적이다. 명동예술극장이 지금까지 주로 40대 이상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잘 알려진 고전이나 잘 짜인 드라마 중심의 현대 영미권 희곡에 스타 마케팅을 일부 결합해 선보여온, 상대적으로 무난하고 안전한 작품과는 궤를 달리 한다.

국립극단의 의뢰를 받아 독일 신진 극작가 니스 몸 스토크만이 현대 사회의 ‘파워’(권력)를 주제로 희곡을 썼고, 독일 연출가 알렉시스 부흐가 연출했다. 작품은 극에 등장하는 작가의 대사처럼 ‘포스트모던’하고, 사실주의 연극의 개념인 ‘제4의 벽’(무대와 객석 사이에 놓은 가상의 벽)을 수시로 허문다. 배우들은 때때로 역할에서 벗어나 “우리가 지금 연극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관객 모독’ 적인 대사들도 유머로 적절히 포장돼 직·간접적으로 등장한다.

프롤로그와 세 편의 에피소드, 에필로그로 구성된 작품의 각 장은 실제와 허구의 경계, 연극의 기성 구조를 해체하는 ‘포스트모던’한 기법으로 거칠게 연결된다. 에피소드들은 상당히 이질적이다. 명분 없는 전쟁을 지속하는 권력의 논리를 밝히는 1편은 우화적이고, 다국적 회사에서 현대인의 소비 행태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 2편은 사실적이며, 구조적으로 내면화된 은밀한 메커니즘에 의해 스스로를 억압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다룬 3편은 몽환적이다. 각각 현대 권력구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그린 듯도 하고, 현재 이 시대를 지배하는 권력의 일면들을 보여주는 듯도 하다.

지금의 한국 사회를 반영한 설정이 일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독일어권 문화의 색채가 강하게 드러난다. 형식에선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하이네 뮐러, 주요 인물 캐릭터와 주제의식에선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영향이 엿보인다. 현대사회에서 예술의 기능과 역할, 한계를 고민하는 독일 연극인들의 문제의식도 치열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작가가 서두에 말하는 대로 ‘서울, 아시아, 베를린, 그리고 유럽 어디든’ 공감을 얻어낼 만한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전지구적으로 비슷해지는 현대 사회의 특징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적이고 철학적인 작품이다. 연극적 재미도 갖췄고 에너지도 넘친다. 다만 명동예술극장의 이전 작품들에 비한다면 충분히 실험적이고 전위적이다. 작품 전체뿐 아니라 에피소드별로도 관객의 호불호가 갈릴 듯 싶다. 연극계에 논란을 일으킬 만한 무대다. 오는 21일까지, 2만~5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