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과실'만 따려는 코스닥분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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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증권부 차장 kimdw@hankyung.com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AlC IXH XAN).’ 15세기 플랑드르 화가 얀 반 에이크의 대표작 ‘붉은 터번을 두른 남자의 초상’ 틀 상단에 적힌 옛 네덜란드어 글귀다. 1433년 10월21일 완성된 이 그림은 1851년부터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전시돼 있고, 미술관을 대표하는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표주자라는 에이크 스스로도 자신 있게 내세울 만한 작품이라 여겼기에 “최선을 다했다”는 문구를 남겼을 것이다.
뜬금없이 그림 얘기를 꺼낸 것은 코스닥시장 발전 방안을 놓고 시장 참여자와 벤처업계 관계자, 감독당국이 모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남 탓’이나 하며 손쉽게 해결책을 찾으려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어서다.
‘2부 리그’ 전락은 누구 탓
금융위원회는 이르면 이달 중 한국거래소 구조개혁 개편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개편안의 핵심은 ‘코스닥 독립’이다. 거래소에서 코스닥시장 관리 권한을 떼어 놓겠다는 이유로는 거래소가 ‘모험시장’인 코스닥시장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과도하게 안전 위주 규제를 펼친 탓에 시장이 정체됐다는 점이 주로 거론된다. 대형주 위주의 유가증권시장과 동일한 상장, 공시, 시장감시 규제를 받는 것이 부담스러운 만큼 ‘문턱’을 낮추자는 주장이다. 거래소가 독점체제에 안주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졌고, 시장의 효율성이 떨어졌다는 논리도 내세운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코스닥을 ‘분리’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시장에선 지난달 말부터 코스닥 분리를 주제로 열린 수차례 세미나와 공청회를 두고 감독당국이 거래소의 ‘게으름’과 ‘무능’을 희생양 삼아 본격적인 분리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코스닥 독립을 둘러싼 논의에서 과거 코스닥증권시장과 증권거래소가 왜 통합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한 진지한 반성은 없다. 2000년대 초 ‘벤처거품’이 꺼지면서 상장폐지 기업이 속출했고 개인투자자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었다. 투자자 보호와 시장 건전화를 명분으로 2005년 코스닥증권시장과 증권거래소를 합쳤는데 다시 상장 문턱과 시장 감시기준을 낮춘다면 과거의 ‘폐해’가 재발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 것인지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코스닥 분리가 만병통치약?
‘통합’ 거래소가 시장의 발목만 잡았는지도 객관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규제 문턱이 낮았던 2004년엔 신규 상장이 52개사에 불과했으나 작년에는 코스닥시장 상장사 수가 67개사나 됐다. 올해엔 상장 기준을 낮추지 않고도 100~150개 기업이 상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건전화 기조는 뚜렷하다. 코스닥시장의 상장폐지 건수는 통합 직전인 2004년 42개사에서 지난해 15개사로 64.28% 줄었다. 과연 규제 때문에 벤처기업 상장과 모험자본의 투자금 회수가 부진했다고 전가할 수 있을까.
코스닥시장 활성화는 상장을 추진 중인 기업, 그 기업에 돈을 댄 벤처투자자가 모두 ‘최선을 다해야’ 가능하다. 관리자를 ‘분가’시켜 만만한 ‘얼굴마담’만 앉힌다고 만사가 술술 풀릴 수는 없다. ‘높은 문턱’에도 불구하고 올 들어 코스닥시장은 유가증권시장보다 훨씬 역동적인 모습이다. 코스닥 분리가 진정 시급한 문제인지 의구심이 풀리지 않는다.
김동욱 증권부 차장 kimdw@hankyung.com
뜬금없이 그림 얘기를 꺼낸 것은 코스닥시장 발전 방안을 놓고 시장 참여자와 벤처업계 관계자, 감독당국이 모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남 탓’이나 하며 손쉽게 해결책을 찾으려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어서다.
‘2부 리그’ 전락은 누구 탓
금융위원회는 이르면 이달 중 한국거래소 구조개혁 개편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개편안의 핵심은 ‘코스닥 독립’이다. 거래소에서 코스닥시장 관리 권한을 떼어 놓겠다는 이유로는 거래소가 ‘모험시장’인 코스닥시장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과도하게 안전 위주 규제를 펼친 탓에 시장이 정체됐다는 점이 주로 거론된다. 대형주 위주의 유가증권시장과 동일한 상장, 공시, 시장감시 규제를 받는 것이 부담스러운 만큼 ‘문턱’을 낮추자는 주장이다. 거래소가 독점체제에 안주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졌고, 시장의 효율성이 떨어졌다는 논리도 내세운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코스닥을 ‘분리’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시장에선 지난달 말부터 코스닥 분리를 주제로 열린 수차례 세미나와 공청회를 두고 감독당국이 거래소의 ‘게으름’과 ‘무능’을 희생양 삼아 본격적인 분리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코스닥 독립을 둘러싼 논의에서 과거 코스닥증권시장과 증권거래소가 왜 통합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한 진지한 반성은 없다. 2000년대 초 ‘벤처거품’이 꺼지면서 상장폐지 기업이 속출했고 개인투자자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었다. 투자자 보호와 시장 건전화를 명분으로 2005년 코스닥증권시장과 증권거래소를 합쳤는데 다시 상장 문턱과 시장 감시기준을 낮춘다면 과거의 ‘폐해’가 재발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 것인지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코스닥 분리가 만병통치약?
‘통합’ 거래소가 시장의 발목만 잡았는지도 객관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규제 문턱이 낮았던 2004년엔 신규 상장이 52개사에 불과했으나 작년에는 코스닥시장 상장사 수가 67개사나 됐다. 올해엔 상장 기준을 낮추지 않고도 100~150개 기업이 상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건전화 기조는 뚜렷하다. 코스닥시장의 상장폐지 건수는 통합 직전인 2004년 42개사에서 지난해 15개사로 64.28% 줄었다. 과연 규제 때문에 벤처기업 상장과 모험자본의 투자금 회수가 부진했다고 전가할 수 있을까.
코스닥시장 활성화는 상장을 추진 중인 기업, 그 기업에 돈을 댄 벤처투자자가 모두 ‘최선을 다해야’ 가능하다. 관리자를 ‘분가’시켜 만만한 ‘얼굴마담’만 앉힌다고 만사가 술술 풀릴 수는 없다. ‘높은 문턱’에도 불구하고 올 들어 코스닥시장은 유가증권시장보다 훨씬 역동적인 모습이다. 코스닥 분리가 진정 시급한 문제인지 의구심이 풀리지 않는다.
김동욱 증권부 차장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