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워털루 동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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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1815년 6월18일 벨기에 동남부의 워털루 벌판. 나폴레옹의 프랑스군 12만4000여명과 영국 웰링턴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 9만5000여명이 맞붙었다. 프로이센군 12만3000여명도 연합군을 돕기 위해 달려왔다. 도합 34만 병력이 참가한 이 전투는 유럽의 역사를 단숨에 바꿔놓았다.
양측 모두 물러설 수 없는 벼랑끝 전투였다. 엘바 섬을 탈출해 극적으로 권력을 되찾은 나폴레옹으로서는 재기를 위해 반드시 이겨야 했고, 연합군은 동요하는 주변국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도 절대 패해서는 안 됐다. 불세출의 영웅과 최고 명장의 대결은 드라마틱했다.
수적으로 열세인 나폴레옹은 각개격파 전략으로 승기를 잡는 듯했으나 반전 끝에 결국 참패했다. 전날 내린 폭우로 진흙탕이 된 전장에서 출격을 늦추는 바람에 연합군이 전열을 가다듬고 프로이센군과 합류할 시간을 주고 말았다. 결말은 단 하루 만에 나버렸다. 산업혁명을 선도한 영국이 프랑스를 압도한 전투이자 현대 유럽의 개막을 알린 순간이었다.
워털루 들판에 서면 당시 나폴레옹의 탄식과 웰링턴의 환호가 들리는 듯하다.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사자의 언덕’에는 프랑스군의 무기를 녹여 만든 사자상이 서 있다. 그 높고 쓸쓸한 조각상 위로 연인들의 승패를 재치있게 패러디한 아바의 노래 ‘워털루’가 흐르는 듯도 하다. 워털루 전투의 잔영은 200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을 잇는 유로스타 런던 종착지 ‘워털루역’의 개명을 프랑스가 요구하는 등 양측의 신경전도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연합국이었던 벨기에와 프랑스 간의 ‘워털루 동전 전투’가 화제다. 석 달 전 벨기에가 ‘사자의 언덕’을 새긴 2유로짜리 워털루 전투 200주년 기념주화를 선보이자 프랑스가 발끈했다. 유로존의 통화 단일화에 배치된다는 프랑스의 압박에 벨기에는 두 손을 들었다. 외신들은 ‘2차 워털루 전투가 벌어졌다’며 ‘승자는 프랑스’라고 전했다.
그런데 전투는 끝난 게 아니었다. 이번에는 공식 액면가가 아닌 2.5유로짜리 주화로 벨기에가 반격하고 나섰다. 비정기적인 액면가는 회원국이 단독으로 발행할 수 있다는 조항을 이용, 숫자를 2.5로 바꾸고 프랑스의 역공을 교묘히 피하면서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벨기에 재무장관은 “워털루만큼 중요하고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전투가 어디 있느냐”는 농담까지 곁들였다. 동전 전쟁의 최후 승자는 벨기에인 셈이다. 워털루 전쟁이 벨기에 독립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들이 각별히 여길 만도 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양측 모두 물러설 수 없는 벼랑끝 전투였다. 엘바 섬을 탈출해 극적으로 권력을 되찾은 나폴레옹으로서는 재기를 위해 반드시 이겨야 했고, 연합군은 동요하는 주변국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도 절대 패해서는 안 됐다. 불세출의 영웅과 최고 명장의 대결은 드라마틱했다.
수적으로 열세인 나폴레옹은 각개격파 전략으로 승기를 잡는 듯했으나 반전 끝에 결국 참패했다. 전날 내린 폭우로 진흙탕이 된 전장에서 출격을 늦추는 바람에 연합군이 전열을 가다듬고 프로이센군과 합류할 시간을 주고 말았다. 결말은 단 하루 만에 나버렸다. 산업혁명을 선도한 영국이 프랑스를 압도한 전투이자 현대 유럽의 개막을 알린 순간이었다.
워털루 들판에 서면 당시 나폴레옹의 탄식과 웰링턴의 환호가 들리는 듯하다.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사자의 언덕’에는 프랑스군의 무기를 녹여 만든 사자상이 서 있다. 그 높고 쓸쓸한 조각상 위로 연인들의 승패를 재치있게 패러디한 아바의 노래 ‘워털루’가 흐르는 듯도 하다. 워털루 전투의 잔영은 200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을 잇는 유로스타 런던 종착지 ‘워털루역’의 개명을 프랑스가 요구하는 등 양측의 신경전도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연합국이었던 벨기에와 프랑스 간의 ‘워털루 동전 전투’가 화제다. 석 달 전 벨기에가 ‘사자의 언덕’을 새긴 2유로짜리 워털루 전투 200주년 기념주화를 선보이자 프랑스가 발끈했다. 유로존의 통화 단일화에 배치된다는 프랑스의 압박에 벨기에는 두 손을 들었다. 외신들은 ‘2차 워털루 전투가 벌어졌다’며 ‘승자는 프랑스’라고 전했다.
그런데 전투는 끝난 게 아니었다. 이번에는 공식 액면가가 아닌 2.5유로짜리 주화로 벨기에가 반격하고 나섰다. 비정기적인 액면가는 회원국이 단독으로 발행할 수 있다는 조항을 이용, 숫자를 2.5로 바꾸고 프랑스의 역공을 교묘히 피하면서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벨기에 재무장관은 “워털루만큼 중요하고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전투가 어디 있느냐”는 농담까지 곁들였다. 동전 전쟁의 최후 승자는 벨기에인 셈이다. 워털루 전쟁이 벨기에 독립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들이 각별히 여길 만도 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