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부동산 시장은 과거의 침체에서 벗어나 턴어라운드했다. 저금리 덕에 주택 실수요가 늘었고, 분양가 상한제 폐지 등 정책 지원도 컸다. 하지만 예전처럼 대형건설사가 주도하는 시장이 다시 오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부동산 트렌드가 달라진 것이다. 마치 1990~2000년대 일본의 상황과 닮아가고 있다. 변화의 특징은 건설 및 부동산 그리고 관련 산업 등 크게 세 가지 틀에서 전망할 수 있다.

○전문성을 지닌 디벨로퍼 역할 확대

전문성 지닌 디벨로퍼 역할 갈수록 커져…신탁사업도 활발해질 듯
부동산 사업은 디벨로퍼(부동산 개발자)의 역할이 커지고 시공사의 역할은 축소되고 있다. 전문성이 결여돼도 자산가치 상승으로 인해 레버리지(부채)를 일으켰던 과거의 종합건설사 모델은 지속되기 어렵다. 이제는 주택개발에서 복합개발 방식으로 헤게모니가 바뀌면서 충분한 자금과 개발력을 지닌 대형 디벨로퍼로 무게중심이 옮겨올 것이다.

국내 주택·건설시장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디벨로퍼와 시공사의 완벽한 영역 분리가 이뤄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디벨로퍼의 직접 개발 외에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는 신탁개발 사업도 확대될 것이다. 시공사 측면에선 과도한 레버리지를 일으키기보다 확실한 구조조정과 원가절감 능력으로 시공에 충실한 중소형사가 오히려 사업구조가 낫다. 최근 지방 중소도시의 중견 건설사를 중심으로 주택공급이 이뤄진 것도 같은 맥락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기업들은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에 따라 생존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아직은 단기적으로 분양 수입에 일정부분 의존하고 있지만 이를 넘어서기 위해 준비 중인 건설사들이 많다. 기존 건설사 중에서는 현대산업개발이 디벨로퍼로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임대주택 사업에 참여한 한국토지신탁 등 전문 디벨로퍼들도 주목할 만하다. 오는 23일 상장 예정인 SK D&D는 2004년 설립된 전문 디벨로퍼다. SK D&D는 대기업 계열사로 높은 대외 신인도와 금융역량을 갖추고 있어 대형 디벨로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건설산업, 경계가 없어진다

인테리어 리모델링 등 주택개조 사업은 부동산 가격이 급등락하지 않고 거래도 완전히 정체되지 않는 과도기적 상황에 놓인 한국 주택시장에서 구조적 성장이 가능한 업종이다. 소득 증가와 노후주택 증가로 리모델링 수요가 늘고 있어 추세적 매출 증가가 가능하다.

한국은 실거주 중심의 주거 소비와 재고주택 노후화로 주택 가치가 하락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정책효과에 힘입어 실수요가 매매로 전환되고, 생산가능 인구의 성장이 최소 2020년까지 유효하다는 측면에서 재고주택 관리시장은 점진적으로 커질 전망이다. 한국은 주택신축(전방)에서 임대, 관리, 리폼 등 재고주택 관리(후방)로의 이동이 불가피하다.

건자재업체의 궁극적 목표는 리모델링의 토털 솔루션을 제공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 분야에는 한샘, KCC, LG하우시스 등이 가장 적극적이다. 한샘은 ‘한샘IK’, LG하우시스는 ‘지인몰’, KCC는 ‘홈씨씨’ 등의 유통망을 통해 패키지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가구·건자재업체들은 단기적으론 분양시장 회복으로 2017년까지 기업 간 거래(B2B) 매출이 커질 것이다. B2B 비중이 여전히 절반 이상인 KCC와 LG하우시스의 성장을 담보하는 요인이다. 2018년부터는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점유율이 관건이 될 것이다. 아이템이 단순하고 유통망이 열악한 마루나 가구 등 영세업체는 대형사의 하청업체로 기능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불안한 해외건설…유가하락 진정

지난 1분기 실적 발표 이후 대형 건설사들의 공통점은 해외 매출이 부진하고 원가율이 불안하다는 점이다. 여전히 일부 기업은 해외 프로젝트에 노출돼 있다. 유가 하락에 따른 해외 수주 가뭄과 잔액 하락도 현 시장 상황을 잘 반영해준다. 2013년 이후 큰 손실을 본 건설사들은 신규 수주에 소극적이다.

하지만 일부 업체는 체인지오더(change order·공사 추가 및 변경 계약)로 손실을 보전할 전망이다. 대림산업의 ‘쇼아이바 프로젝트’와 현대건설의 ‘마덴 프로젝트’가 PAC(준공증명서)를 수령하고 변경계약을 준비 중이다. 대림산업의 쇼아이바 프로젝트는 2770억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했다. 대형 발전소 준공 사례인 만큼 변경계약 가능성이 높다. 현대건설의 마덴 프로젝트의 경우 1분기 추가 원가 400억원을 투입하고 준공과 함께 변경계약을 신청했다.

최근 들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도 재개되고 있다. LNG 프로젝트는 사업기간이 평균 6년으로 매우 긴 편이기 때문에 향후 LNG 수요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작년 10월부터 진행된 유가 급락이 진정되고 있고 2020년 이후 유가를 예상하기 어려운 반면 아시아에서의 LNG 수요 증가는 뚜렷하기 때문이다. 설계·구매·건설(EPC)업체가 장기 저유가 시대를 이기며 성장하는 방법은 진입장벽이 높은 핵심상품 발굴뿐이다.

이경자 <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 kyungja.lee@truefriend.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