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돌파] "목재 귀한 케냐·우간다서 가구 팔자"…환성기업, 역발상으로 업계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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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서 꽃피우는 기업가 정신
(8) 동아프리카 1위 시스템가구업체 환성기업 장재영 대표
한계 맞은 생선가공업체
현지서 안 먹는 물고기 유럽 수출, '돈 된다' 소문나자 경쟁자 몰려
업종 전환으로 위기 탈출
경제성장으로 아파트 건설 붐…맞춤형 가구 공급해 제2도약
고급 인테리어업체 변신
중국 업체 공습, '디자인만이 살길'…호텔·공항 인테리어 수주로 활로
(8) 동아프리카 1위 시스템가구업체 환성기업 장재영 대표
한계 맞은 생선가공업체
현지서 안 먹는 물고기 유럽 수출, '돈 된다' 소문나자 경쟁자 몰려
업종 전환으로 위기 탈출
경제성장으로 아파트 건설 붐…맞춤형 가구 공급해 제2도약
고급 인테리어업체 변신
중국 업체 공습, '디자인만이 살길'…호텔·공항 인테리어 수주로 활로
“됐다.” 장재영 환성기업 대표(56)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올초 케냐 파나리호텔 가구 입찰에서 승리한 순간이었다. 파나리호텔은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160실 규모로 문을 여는 5성급 호텔이다. 케냐의 관문인 조모 케냐타 국제공항 근처에 있는 데다 나이로비 첫 5성급 호텔이라는 위상 때문에 주목받고 있다. 이 호텔의 내부 인테리어와 가구 공급을 환성기업이 맡은 것이다. 장 대표는 “가구 전문이었던 환성기업이 최고급 인테리어 시장에서도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 더 기뻤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진출 10년 만에 업계 1위
환성기업은 아프리카에 있는 시스템 가구업체다. 시스템 가구란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거실·주방용 맞춤 가구다. 건설회사의 주문에 맞춰 생산해 공급한다. 환성기업은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시스템 가구시장 1위 업체다. 케냐와 우간다 중상류층에서는 ‘가구 하면 환성’으로 통한다.
2002년 우간다에서 가구업을 시작해 2004년 케냐로 사업을 넓힌 지 10여년 만에 동아프리카 가구시장의 50%가량을 점유한 선두업체가 됐다. 연간 매출은 케냐에서 700만달러, 우간다에서 2800만달러 등 총 3500만달러다. 우간다에선 가구 조립뿐 아니라 알루미늄과 폴리염화비닐(PVC) 목공공장 등 종합 가구생산 단지를 갖추고 있다. 남수단 수도 주바에도 건축 내외장재 가공 설비와 물류센터를 두고 있다.
환성은 원래 생선 가공업체였다. 창업주인 김성환 회장(61)은 아프리카를 무대로 무역상을 하다 1991년 우간다에 생선 가공수출 공장을 세웠다. 이 회사가 주로 가공한 생선은 나일퍼치(민물 농어과 물고기)였다. 대한민국 면적의 절반이 넘는 우간다 빅토리아 호수(6만8800㎡)에 사는 나일퍼치는 최대 2m까지 자라는 어종이다. 현지인들은 육질이 질기다며 고기를 잡아도 내다 버렸다. 김 회장은 육질이 단단한 나일퍼치를 유럽에서 즐겨 먹는 ‘피시앤드칩스(생선과 감자튀김)’ 재료로 수출하면 잘되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대성공이었다.
한창 잘될 때는 직원만 800명이 넘었다.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 동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냉동공장도 지었다. 그러나 너무 잘된 게 탈이었다. 나일퍼치 가공이 돈 되는 사업이란 소문이 퍼지자 너도나도 달려들었다. 진입장벽이 없어 곧 피 튀기는 시장이 됐다. ‘물 반 고기 반’이었던 빅토리아 호수에서 나일퍼치의 씨가 말라갔다. 다른 사업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김 회장에게 문이 열렸다. 2001년 HSBC은행 싱가포르지점에서 퇴사하고 새 일자리를 찾던 장 대표를 만난 게 계기가 됐다. 장 대표는 신문에 난 환성기업의 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냈고, 김 회장은 한국으로 날아가 그를 만났다. 김 회장은 “장 대표의 아이디어와 성실한 모습에 반했다”고 회고했다. 1주일 뒤 장 대표는 아프리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동아프리카 최대 맞춤 가구업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아파트 열풍 업고 급성장
장 대표는 신사업으로 시스템 가구업을 제안했다. 회사의 첫 반응은 냉담했다. 동아프리카에서 가구사업이 가당하겠느냐는 핀잔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케냐, 우간다 같은 동아프리카는 사바나라고 불리는 대초원 지대였다. 정글이 우거진 서아프리카와 달랐다. 목재를 구하기 어려웠다.
장 대표는 이를 기회로 생각했다. 나무가 귀한 곳에서 가구사업을 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원료를 구하기 어려운 것이 자연스러운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장을 선점하는 게 중요했다. 원료는 한국과 중국에서 합판을 수입해 쓰면 될 일이었다. 인력도 풍부했다. 기계만 도입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가능성이 있었다.
때마침 동아프리카에서는 아파트 건설 붐이 불고 있었다. 케냐는 2004년 이후 매년 3~8%에 이르는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2008년을 제외하곤 꾸준한 성장세다. 견실한 경제성장에 중산층이 두터워졌고, 이들을 수용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2006년 177만t이었던 케냐의 시멘트 소비량은 2012년 394만t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건설업종 성장률은 같은 기간 매년 20~30%를 넘는 고속성장을 계속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생겨나면서 시스템 가구 수요도 폭발했다. 장 대표는 “케냐의 인구증가율을 맞추려면 매년 30만가구의 주택이 공급돼야 하지만 실제로는 5만가구밖에 공급이 안 된다”며 “앞으로 주택시장과 시스템 가구시장은 무궁무진하게 커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테리어 사업으로 제3의 도약
그러나 기회는 또 다른 위기를 잉태하기 마련. 시스템 가구업이 호황을 보이자 경쟁업체가 다시 곳곳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2000년 초 가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4~5곳에 불과하던 경쟁업체가 지금은 30여곳이 넘는다. 상류층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가구시장에선 독일과 영국 업체들이, 저가 시장은 중국 업체들이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장 대표는 업계 선두를 지키면서도 새로운 사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 도전은 인테리어 사업이었다. 앞으로 시장의 관건은 단순 가구 제조보다는 경쟁력 있는 디자인에 있다고 봤다. 한국에 디자인센터를 세워 최신 트렌드를 공부했다. 그 노하우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나이로비 매장 진열대와 은행 병원 사무실 등의 인테리어 사업을 잇따라 수주했다. 또 국제공항 검색대와 탑승권 판매대 등 공항 데스크 제조시장에서도 우수한 디자인과 기술로 경쟁력을 확보했다. 최근 파나리호텔로부터 인테리어와 가구공급 계약을 딴 것은 환성기업으로서는 생선가공에서 시스템 가구를 거쳐 인테리어업체로 변신하는 ‘제3의 도약’을 기약하는 순간이었다.
장 대표는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시험해보는 도전정신이 필요하다”며 “환성은 항상 변신하는 자세로 업계를 주도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환성은 나홀로 성공을 즐기지 않는다. 지역 자선사업에도 열심이다. 환성의료자선원이라는 계열사를 따로 두고 있다. 2007년 김 회장이 100만유로를 출연하고 환성기업이 매달 1만달러를 기부해 케냐와 우간다의 심장병 어린이 500여명을 치료했다. 장 대표는 “해외에서 성공하려면 현지인에게 도움이 되는 회사란 확신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이로비=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아프리카 진출 10년 만에 업계 1위
환성기업은 아프리카에 있는 시스템 가구업체다. 시스템 가구란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거실·주방용 맞춤 가구다. 건설회사의 주문에 맞춰 생산해 공급한다. 환성기업은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시스템 가구시장 1위 업체다. 케냐와 우간다 중상류층에서는 ‘가구 하면 환성’으로 통한다.
2002년 우간다에서 가구업을 시작해 2004년 케냐로 사업을 넓힌 지 10여년 만에 동아프리카 가구시장의 50%가량을 점유한 선두업체가 됐다. 연간 매출은 케냐에서 700만달러, 우간다에서 2800만달러 등 총 3500만달러다. 우간다에선 가구 조립뿐 아니라 알루미늄과 폴리염화비닐(PVC) 목공공장 등 종합 가구생산 단지를 갖추고 있다. 남수단 수도 주바에도 건축 내외장재 가공 설비와 물류센터를 두고 있다.
환성은 원래 생선 가공업체였다. 창업주인 김성환 회장(61)은 아프리카를 무대로 무역상을 하다 1991년 우간다에 생선 가공수출 공장을 세웠다. 이 회사가 주로 가공한 생선은 나일퍼치(민물 농어과 물고기)였다. 대한민국 면적의 절반이 넘는 우간다 빅토리아 호수(6만8800㎡)에 사는 나일퍼치는 최대 2m까지 자라는 어종이다. 현지인들은 육질이 질기다며 고기를 잡아도 내다 버렸다. 김 회장은 육질이 단단한 나일퍼치를 유럽에서 즐겨 먹는 ‘피시앤드칩스(생선과 감자튀김)’ 재료로 수출하면 잘되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대성공이었다.
한창 잘될 때는 직원만 800명이 넘었다.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 동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냉동공장도 지었다. 그러나 너무 잘된 게 탈이었다. 나일퍼치 가공이 돈 되는 사업이란 소문이 퍼지자 너도나도 달려들었다. 진입장벽이 없어 곧 피 튀기는 시장이 됐다. ‘물 반 고기 반’이었던 빅토리아 호수에서 나일퍼치의 씨가 말라갔다. 다른 사업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김 회장에게 문이 열렸다. 2001년 HSBC은행 싱가포르지점에서 퇴사하고 새 일자리를 찾던 장 대표를 만난 게 계기가 됐다. 장 대표는 신문에 난 환성기업의 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냈고, 김 회장은 한국으로 날아가 그를 만났다. 김 회장은 “장 대표의 아이디어와 성실한 모습에 반했다”고 회고했다. 1주일 뒤 장 대표는 아프리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동아프리카 최대 맞춤 가구업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아파트 열풍 업고 급성장
장 대표는 신사업으로 시스템 가구업을 제안했다. 회사의 첫 반응은 냉담했다. 동아프리카에서 가구사업이 가당하겠느냐는 핀잔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케냐, 우간다 같은 동아프리카는 사바나라고 불리는 대초원 지대였다. 정글이 우거진 서아프리카와 달랐다. 목재를 구하기 어려웠다.
장 대표는 이를 기회로 생각했다. 나무가 귀한 곳에서 가구사업을 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원료를 구하기 어려운 것이 자연스러운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장을 선점하는 게 중요했다. 원료는 한국과 중국에서 합판을 수입해 쓰면 될 일이었다. 인력도 풍부했다. 기계만 도입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가능성이 있었다.
때마침 동아프리카에서는 아파트 건설 붐이 불고 있었다. 케냐는 2004년 이후 매년 3~8%에 이르는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2008년을 제외하곤 꾸준한 성장세다. 견실한 경제성장에 중산층이 두터워졌고, 이들을 수용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2006년 177만t이었던 케냐의 시멘트 소비량은 2012년 394만t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건설업종 성장률은 같은 기간 매년 20~30%를 넘는 고속성장을 계속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생겨나면서 시스템 가구 수요도 폭발했다. 장 대표는 “케냐의 인구증가율을 맞추려면 매년 30만가구의 주택이 공급돼야 하지만 실제로는 5만가구밖에 공급이 안 된다”며 “앞으로 주택시장과 시스템 가구시장은 무궁무진하게 커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테리어 사업으로 제3의 도약
그러나 기회는 또 다른 위기를 잉태하기 마련. 시스템 가구업이 호황을 보이자 경쟁업체가 다시 곳곳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2000년 초 가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4~5곳에 불과하던 경쟁업체가 지금은 30여곳이 넘는다. 상류층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가구시장에선 독일과 영국 업체들이, 저가 시장은 중국 업체들이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장 대표는 업계 선두를 지키면서도 새로운 사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 도전은 인테리어 사업이었다. 앞으로 시장의 관건은 단순 가구 제조보다는 경쟁력 있는 디자인에 있다고 봤다. 한국에 디자인센터를 세워 최신 트렌드를 공부했다. 그 노하우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나이로비 매장 진열대와 은행 병원 사무실 등의 인테리어 사업을 잇따라 수주했다. 또 국제공항 검색대와 탑승권 판매대 등 공항 데스크 제조시장에서도 우수한 디자인과 기술로 경쟁력을 확보했다. 최근 파나리호텔로부터 인테리어와 가구공급 계약을 딴 것은 환성기업으로서는 생선가공에서 시스템 가구를 거쳐 인테리어업체로 변신하는 ‘제3의 도약’을 기약하는 순간이었다.
장 대표는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시험해보는 도전정신이 필요하다”며 “환성은 항상 변신하는 자세로 업계를 주도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환성은 나홀로 성공을 즐기지 않는다. 지역 자선사업에도 열심이다. 환성의료자선원이라는 계열사를 따로 두고 있다. 2007년 김 회장이 100만유로를 출연하고 환성기업이 매달 1만달러를 기부해 케냐와 우간다의 심장병 어린이 500여명을 치료했다. 장 대표는 “해외에서 성공하려면 현지인에게 도움이 되는 회사란 확신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이로비=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