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왈종 화백(왼쪽)과 배우 안성기 씨가 최근 제주 서귀포시 이왈종미술관에서 열린 ‘북한 어린이 돕기 판화 및 소품전’에서 만나 미술과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왈종 화백(왼쪽)과 배우 안성기 씨가 최근 제주 서귀포시 이왈종미술관에서 열린 ‘북한 어린이 돕기 판화 및 소품전’에서 만나 미술과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림그리기와 연기는 ‘소통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장르입니다. 인간의 원초적인 생명력을 손이나 몸짓, 눈빛으로 풀어내는 아름다운 작업이잖아요.” (이왈종 화백)

“연기를 통해 감동을 만들어내듯 그림 또한 붓끝으로 감동을 뿜어내는 것이죠.” (배우 안성기)

미술과 영화분야 스타인 이왈종 화백(70)과 배우 안성기 씨(63). 제주 서귀포시 이왈종미술관에서 열리는 이 화백의 ‘유니세프 북한 어린이 돕기 판화 및 소품전’에서 최근 만난 두 사람은 “모든 예술은 감동을 뽑아내고, 그 감동이 세상을 더 편안하고 아름답게 만든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화백은 1989년 서귀포로 내려와 25년간 캔버스 앞에 앉아 무색무취한 ‘제주생활의 중도’ 정신을 붓질로 우려내고 있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친선대사로 활동하는 안씨는 58년 동안 연기생활을 하며 160여편의 영화에 출연한 ‘국민배우’다. 지난 4월 영화 ‘화장’에서 50대 중반의 화장품회사 임원 역을 맡아 병든 아내와 젊은 여자 사이에서 번민하는 모습을 리얼하게 연기했다. 유니세프 활동과 작품으로 서로를 알고 있던 두 사람이 나눈 이야기를 들어봤다.

▷안성기=‘제주생활의 중도’란 작품을 봤을 때 내 머뭇거림의 동반자를 만난 듯싶었습니다. 골프장과 제주 풍경은 마치 무법이 필법처럼 거침없이 공간을 가르며 화려한 미감을 유감없이 보여주더군요.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고 사람과 꽃, 사슴, 새 등 동식물이 한 화면 속에 어울려 뛰어노는 것을 보고 직감적으로 중도의 세계와 통정하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왈종=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기도 하지만 배우의 생동하는 기운이 스크린에 맺히는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화장’에서 삶에 잠재한 이별과 죽음, 늙어감과 욕망에 대한 변주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섬세한 감정의 층을 연기한 배우야말로 미학의 또 다른 표현이겠지요.”

▷안=그림에서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고뇌를 발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고, 색을 통해 설명을 제거하고 본질을 보여주고 싶어하더군요. 아마 그 목적지가 ‘제도적인 그림’을 꺼리는 작가의 자존심이 아닌가 합니다. 연기든 그림이든 몸짓이나 ‘터치’라는 형식을 통해 감흥이 스며나오게 해야 제맛이죠.

▷이=‘화장’은 암에 걸려 죽어가는 아내를 보살피는 의무의 행위에서 드러나는 일상의 삭막함과 젊은 직원을 응시함으로써 추동하는 정념의 상태를 은밀한 시선으로 구체화한 겁니다. 절망의 어둠 속에서 건져 올린 빛과 더불어 묘한 신비감이 엿보여요. 사건보다는 인물들의 심리를 부각시킨 흔적은 아무나 잡아낼 수 없는 앵글이 아닌가 해요.”

▷안=제주생활의 중도 역시 사물과 주변과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설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어요. 대상이 충동질해서 그릴 뿐이지, 그림에 메시지를 넣지 않는다는 것이죠. 사람들을 향해 그림을 설명하려 들지 않듯 ‘그림은 스토리텔링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여준 셈인가요.

▷이=제주생활의 중도에는 역사의 슬픔과 가난을 지워냈습니다. 제주에 담긴 빨강과 파랑, 초록색이 내 가슴을 때리더군요. 아름다움은 연속성입니다. 제주를 물들인 꽃이나 새, 사람들이 아름답게 느껴질 때 그것을 바로 그려야 합니다. 지겹도록 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그날그날의 성취감이 없으면 예술가로서 살 수 없을 겁니다.

유니세프에 4년째 매년 3000만원씩 기부하고 있는 이 화백의 이번 전시회는 다음달 31일까지 이어진다. (064)763-36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