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한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공격 최대 취약국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제동을 건 사태를 계기로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국내 자본시장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행동주의 경제학과 마찬가지로 직접 나서서 수익을 챙기는 헤지펀드를 말한다.

헤지펀드란 1949년 미국인 앨프리드 존슨이 처음 만든 일종의 사모펀드다. 대체로 100명 미만의 소수 투자자로부터 개별적으로 자금을 모아 파트너십을 결성한 뒤 카리브해 연안의 버뮤다를 비롯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말레이시아 북동부 등과 같은 조세회피지역에 거점을 마련해 활동해 왔다.

투자 전략은 ‘수동적’ 자세가 지배적이다. 수익을 내주는 주체는 투자 대상이고, 헤지펀드는 레버리지(증거금 대비 총 투자금액) 비율을 끌어올려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했다. 그만큼 규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의 주범인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경우 레버리지 비율이 100배에 달했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한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공격 최대 취약국
헤지펀드 투자 전략에 변화를 몰고 온 것은 2008년에 발생했던 글로벌 금융위기다. 1990년 이후 각종 위기에 직간접적으로 원인을 제공한 헤지펀드가 금융위기를 정점으로 국제 금융시장에 일대 혼란을 초래했다. 특정 사건을 계기로 헤지펀드가 증거금이 부족한 ‘마진 콜’을 당하면 이를 보전하기 위해 기존 투자자산을 회수하는 ‘디레버리지’ 과정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로 악화했다.

이 때문에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가 직접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전환됐다. 미국 단일금융법의 핵심이 된 ‘볼커 룰’에서는 헤지펀드의 상징인 레버리지 비율을 5배 이내로 엄격하게 규제했다. ‘헤지펀드의 대부’로 통했던 조지 소로스가 운용하던 타이거펀드 등의 자금을 고객에게 되돌려주면서 헤지펀드 활동이 위축국면에 들어간 것도 이때부터다.

하지만 엘리엇매니지먼트 운용자인 폴 싱어와 ‘기업사냥꾼’으로 알려진 칼 아이칸 등은 새로운 규제환경에 맞춰 적극 변신해 나갔다.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명목을 내걸고 투자 대상 기업의 모든 것을 간섭하는 능동적인 자세로 바뀐 것이 행동주의 헤지펀드다. 금융위기 이후 수익률에 목말라하는 투자자가 자금을 몰아주면서 급성장하는 추세다.

행동주의 헤지펀드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주인 정신이다. 하지만 한국은 ‘윔블던 현상’이 가장 심한 국가다. 윔블던 현상이란 윔블던 테니스대회에서 주최국인 영국 선수보다 외국 선수가 더 많이 우승하는 것을 말한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우리 국민보다 외국인의 영향력이 높은 것을 뜻한다.

한국처럼 윔블던 현상이 심한 국가는 외자유입에 따른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크게 발생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외국 자본이 한국 경제와 함께 발전하는 공생적 투자가 되지 못해 국부유출과 직결되는 점이다. 벌써부터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외환위기 이후 대표적인 ‘먹튀’ 사례인 ‘제2의 론스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경제정책 무력화도 걱정이다. 외국 자본은 수익을 최우선시함에 따라 한국 정부의 경제정책에 비협조적일 때가 많다. 이 문제는 외국 자본이 확대된 만큼 우리의 경제주권이 약화된다는 의미와 같다. 국제사회에서 금융 위기국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체제에 빗대 윔블던 현상을 ‘제2의 경제신탁통치 시대’라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다.

국내 기업의 경영권도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적대적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수익을 능동적으로 창출해내기 때문에 종전과 같은 수준의 외국인 비중이라 하더라도 국내 기업이 느끼는 경영권 위협 정도는 더 심하다. 이 밖에 소득 불균형을 심화시켜 신용불량, 자살 등 사회병리 현상이 심각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앞으로 더 자주 발생할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외자선호 정책부터 바뀌어야 한다. 이제는 과다 외화보유와 경상수지흑자가 논란이 되고 있는 만큼 외자 정책은 한국 경제의 공생적 투자가 될 수 있느냐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추진해야 한다.

외자유입 정도에 비례해 국내 자본의 육성과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에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처럼 대증적인 사모펀드나 헤지펀드를 조성하기보다는 아직도 제도 곳곳에 만연한 외국 기업과 국내 기업, 외국 자본과 국내 자본 간 역차별 요소를 걷어내는 것이 급선무다.

글로벌 시대에 한국계 자금만 따지는 ‘은둔의 왕국’적인 사고방식은 지양해야겠지만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는 언제든지 백기사가 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런 자세만 있다면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공격으로부터 국내 기업과 우리 국부를 충분히 지킬 수 있다. 내달 17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승인 주주총회 결과가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